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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사역원 터 -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 교육을 담당하던 관아

 [서울 종로구] 사역원 터 -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 교육을 담당하던 관아

사역원은 1393년에 설치된 외국어 교육 기관이자 통·번역 사무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고려 시대의 통문관이나 상원으로 불리던 전통을 계승했다. 한학·여진학·몽학·왜학을 정식으로 취급하였고 여진학은 청나라 성립 이후에는 청학이라고도 불렀다. 국제관계에서의 통역 번역 업무뿐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도 사역원을 통해 활동이 이어졌고, 중국 방면에 진출한 역관들은 직접 과학기술 공부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 국립외교원의 업무를 부분적으로 수행한 사례도 있어, 당시의 국제교류 기능이 다방면으로 작동했다.

사역원은 조선 시대 동안 통·번역 실무를 담당하는 관청으로서 예조의 속아문에 속했고, 『경국대전』에 의하면 예조 판서나 참판이 겸직하던 제조와 실질적 사역원 책임자인 정3품 정 등을 포함한 30명의 관리가 배치되었다. 각 언어별 교육을 맡은 훈도와 실무를 담당하는 별제 등이 배치되었고, 한학 60명, 왜학 20명, 몽학 20명, 청학 20명 등 합계 약 120명 내외의 생도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역관 가문의 자제들이었고, 입학을 위해서는 부모의 4대조 신원조사서와 참상관 이상 2인과 교리 1인의 신원보증서를 제출해야 했다. 15인의 심사관이 서류를 심사하고 비밀투표로 13명 이상이 찬성하면 추천을 받고 입학시험을 통해 합격해야 했다.

입학 과정은 길고 엄격했다. 보통 10대 초반에 시작해 기초 교재인 훈몽자회와 기초 회화서인 노걸대, 박통사 등을 통해 기초를 다진 뒤 현지 언어를 체득하는 현장 학습을 거쳤다. 이 과정은 10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입학 후에는 역과를 통해 역관으로 선발되었으며, 사역원에서 실시하는 정기 시험을 치러 성적이 떨어지면 녹봉 삭감이나 파직의 위기에 처했다. 생도들은 보통 석 달에 한 번씩 평가 시험을 치렀고, 사역원 내부에서는 외국어 사용을 강제하고 규칙을 어길 경우 관리가 파직되었다. 매질과 처벌이 엄격했던 학습 환경은 역관 양성을 위한 체계적이고 엄격한 교육 제도였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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