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요청 처리 중입니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 : 강감찬의 흔적 (2) - 강감찬 사당 안국사, 봉천동 마애미륵좌상

 [서울 관악구] 낙성대 : 강감찬의 흔적 (2) - 강감찬 사당 안국사, 봉천동 마애미륵좌상

강감찬 전시관을 나와 강감찬 사당인 안국사로 향한다. 안국사 입구의 홍살문과 강감찬 동상은 사진으로 담지 못했고, 안국사를 방문한 뒤 마애불을 보러 산에 오르려다 깜빡 잊고 말았다. 낙성대 공원과 사당 안국사는 강감찬을 기리기 위해 1974년 조성되었다. 안내문에는 낙성대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소개되나, 안국사 안의 삼층석탑만이 유형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낙성대 표지석 앞의 안내 문구에는 조선시대에 왕으로부터 휘호를 받아 썼을 듯한 표현들이 가득해 그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박정희대통령께서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장군의 나라를 위한 슬기와 용맹을 이 나라 안보의 의표로 삼게 하시고자 … 낙성대라는 휘호를 하사하시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낙성대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을 기리기 위해 생가 터에 세워졌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높이 4.48m로, 13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단층 기단에 삼층을 올렸고 상륜부는 없어졌다. 기단부 각면과 모서리 기둥에는 우주를 새겼고 1층 몸돌에는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원래는 불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임진왜란의 기록은 탑의 위층이 비틀려 내려앉고 탑 안의 보물이 훔쳐졌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탑 주위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파괴되었고 탑의 동쪽 구릉도 파내어 땅의 혈맥이 끊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침 이곳을 찾은 외국 관광객의 모습도 보였다. 강감찬 영정과 벽면의 귀주대첩 기록화를 안국사 내부에서 관람할 수 있는데, 흰 눈이 쌓인 전장을 묘사한 화면은 귀주대첩의 13년 전 기록을 생생하게 전한다. 낙성대 공원 곳곳에는 ‘강감찬의 도시 관악구’라는 스탬프가 인증 도장처럼 설치되어 있다. 옆 문으로 나가면 강감찬 교육관이 보이고, 전시관과 별도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맞은편 홍살문을 지나 동상을 보지 못한 채 떠나려다 관악산 마애미륵불좌상 안내판에 시선이 멈춘다. 마애불까지의 경로는 약 1.7km였고 산을 올라 만난 조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약 10여 분 오르니 멀리 서울대 캠퍼스가 보이고, 마애불은 주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 위치해 안내판 없이 찾기 어려웠다. 입구에서 약 35분 걸려 도달한 곳은 불상 높이 1.6m의 마애불로, 불상 옆의 명문은 1630년(인조 8) 조성되었음을 알리며 연꽃대좌에 연봉우리를 들고 앉아 있다. 얼굴은 온화하고 풍만하며 몸을 살짝 틀었다. 이중 광배의 표정은 무뚝뚝해 다소 엄숙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풍긴다. 17세기 조각으로는 희귀한 편이며 미륵신앙이 조선사회에 남아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마애불 앞은 공간이 협소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하산길은 낙성대 공원이 아닌 주택가의 작은 공원으로 이어진다.

# 강감찬사당 # 강강찬동상 # 관악구가볼만한곳 # 낙성대공원 # 봉천동마애불 # 봉천동미륵불 # 서울가볼만한곳 # 안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