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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곡의 동대봉산 무장봉,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암곡의 동대봉산 무장봉,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삼국유사"는 계화왕후가 왕의 죽음을 슬퍼하다 "아미타불에게 지성으로 귀의하면 구원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입던 옷과 재물을 모두 희사하여 명장에게 아미타불상과 신중을 만들게 했다고 전합니다. 이 비는 바로 그 불상 조성의 내력을 적은 것입니다. 1760년(영조 36년) 무렵 경주부윤이 된 이계 홍양호는 전설의 명필인 김생의 비석이 무장사에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홍양호는 직접 암곡을 뒤져 비석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발견이 이후 260년에 걸친 서체 논쟁의 불 씨를 당기게 됩니다. 비문의 글씨가 누가 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체 및 서자와 관련해서 왕희지체를 집자한 것이라는 견해와 신라 김육진의 찬병서라는 견해로 나뉘었으나, 근래에 김육진은 찬자이고, 왕희지체에 능한 황룡사 스님이 서자라는 견해가 발표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비석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보통 역할이 나뉘는 편입니다. 撰(찬) — 비문의 내용을 짓는 사람, 찬자; 書(서) — 비문의 글씨를 쓰는 사람, 서자; 刻(각) — 실제로 돌에 새기는 사람, 각자. 한 사람이 짓기도 쓰기도 했을 때 찬병서라고 부릅니다. 비석 뒤 동편 쌍거북의 발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입니다. 숭복사지에 세워진 '초월산 대숭복사비'는 일찍이 파손되어 사라졌던 신라시대의 명비를 필사본 비문과 집자 기술을 바탕으로 1,117년 만에 완벽히 복원한 비석입니다. 쌍귀부 머리 중에 하나로 보이는데,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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