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나라 의학의 각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의료 위인들이 노력하였는데요. 오늘은 우리나라 내과학이 자리 잡게 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김동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1 운동으로 인한 퇴학과 복학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동익은 휘문의숙을 거쳐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 2회 입학시험에 수석으로 합격을 하는데요. 2년 뒤 3월 1일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퇴학에 3개월간 옥고까지 치르게 됩니다.
일제는 곧 복학을 다시 허용했으나, 그는 일제의 차별 교육에 반발해 3년간 복학을 거부하였는데요. 1922년 다시 복학한 그는 1924년 졸업해 경의전 병리학 교실에 조수가 됩니다. 의학박사 학위 취득 조수로 약 2년간 보낸 그는 1926년 조선총독부 의원의 의원이 되는데요. 1928년 조선총독부의원이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 의원으로 바뀌며 그는 '이와이' 교수가 담당하는 의학부 내과의 조수가 됩니다.
이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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