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명은 라 로슈 하우스이다. 현재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프랑스 파리 16구에 위치하며 1925년에 완공되었다. 설계자는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네레로, 단독주택과 미술품 갤러리를 겸하는 형태로 계획되었고 오늘날에는 건축 박물관 및 재단 공간으로 기능한다.
동선의 예술, 건축적 산책과 경사로가 이 집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사진 속 우측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짙은 갈색의 경사로는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계단이 층을 나누지만, 경사로는 걷는 이의 시선을 끊임없이 바꿔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거실에서 시작해 갤러리를 지나 서재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입체적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이 주택은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의 5원칙’이 완숙하게 적용되기 전 치열하게 실험되고 녹아든 프로토타입으로 여겨진다. 전면의 기다란 수평창이 들여오는 빛은 내부의 백색 벽면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의 깊이감을 강조한다. 색채학은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천장의 크림색, 멀리 보이는 하늘빛 패널, 경사로의 묵직한 갈색 등이 의도적으로 조합된다.
이 집의 건축주는 라울 라 로슈로, 스위스 출신의 아방가르드 미술품 수집가이자 은행가였다. “모은 피카소, 브라크, 레제의 입체파 미술품들을 멋지게 전시하면서도 편히 살 수 있는 집”이라는 요구가 설계의 방향으로 반영되었고, 주거 공간과 갤러리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건축적 산책로로 묶어내는 파격적 설계가 실현되었다. 하지만 완공 직후 거대한 유리창과 오픈 플랜으로 인해 겨울에 난방이 불리해 실주거상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건축주는 애를 먹은 일화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라 로슈는 공간을 깊이 사랑했고, 사후에는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기증하여 오늘날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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