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민주화의 성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랑스는 천주교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파리외방전교회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새로운 성당건축이 세워졌습니다.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은 건립 당시부터 한국천주교의 상징이 되었으며, 성당지하묘역에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시의 순교자들의 유해가 봉안되어 있는 성역이기도 합니다.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각종 집회와 시위의 장소로 이용되면서 인권, 민주화, 사회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피신처’ 또는 ‘해방구’로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건축사학자 윤일주는 일찌기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교회당일 뿐 아니라 한국 유일의 순수한 고딕 구조를 갖춘 건물"이라고 명동성당을 평가했습니다. 이후 건축양식적으로 '순수 고딕'이란 지위는 무너졌으나, 건축학자 김정동의 지척처럼, "명동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적 도움에 의존했던 고딕 지향적인 벽돌조 양식성당"으로, 이후 "우리의 손에 의해 지어진 성당도 역시 고딕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