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저 걷다 멈춘 자리, 바다 앞 콘크리트 계단 혼자 걷다 보면, 목적이 없어도 멈추는 자리가 있다.
오늘은 그 자리가 광안리 수변공원의 한쪽 콘크리트 계단이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특별한 조형물도 없지만 그냥 그곳이 좋았다.
바다와 딱 맞닿아 있는 느낌. 잔잔하게 부딪히는 파도 소리, 어디서든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나는 작은 방석처럼 접은 점퍼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무릎 위에는 펼쳐진 책 한 권.
손에는 뜨거운 캔커피. 그리고 귀에는 이어폰이 살며시 들어갔다. ⸻ 2.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으면, 세상은 잠시 나만의 것이 된다 이런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는 일은, 그 자체로 일종의 ‘도피’다. 세상으로부터의, 타인으로부터의, 그리고 때로는 나로부터의 도피.
이어폰에서 흐르던 건, 조금은 흐릿한 피아노 선율. 어딘가 멜랑콜리한 감성이 있는 곡.
바람 소리와 뒤섞이자 그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감정을 이끄는 배경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