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젠가 탑처럼 위로 쌓인 서류 뭉치로부터 종이 몇 장을 집어 땔감 삼아 넣어준다. 육중한 철제 기계는, 기름을 잔뜩 넣은 오래된 트랙터가 낼 법한 타다다닥 하는 시동 걸리는 소리를 낸다.
따스한 모닥불을 보며 황홀하게 멍 때리 듯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주었을 문서가 한순간 한숨의 하얀 재가 되어버린다.
딱 멍 때리는 것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순간이다. 시동이 끊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다음 종이를 집어 넣는다.
소리에 집중한다. 드르르르륵 청소기 소리가 들린다.
매끈한 마룻바닥에서 오돌토돌한 구슬 조각을 빨아들이고 있는 진공청소기. 갓난아기는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새근새근 잘 잔다는데.
그렇게 잠에 집중하는 신생아 시절 내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하며 소리를 타고 과거에 다녀오기도 한다. 반은 무의식적으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다 보면 불현듯 단순하지만 귀에 꽂히는 높은 음이 들려온다.
새벽 제설차가 후진하...
원문 링크 : 파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