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庚寅 : 도기 42, 서기 1950 양력 6월 25일)년 (향년56세) 1950년 6. 25 사변이 일어나자 많은 국민과 도인들이 남으로 피란하게 되었으며, 부산(보수도정)도장 근처로 모여들어 판잣집 · 토담집 등 임시 건물을 짓고 난민 생활을 하게 되니 보수동 일대는 도인들의 집단지가 되었다. 이때 상제님께서 도인들에게 생계보조와 직장알선 등 여러 가지로 애휼하심으로써 생활이 단시일에 안정될뿐더러, 상제님을 지척에서 모실 수 있고 집단생활로써 신심과 단결이 강화되며 도인 간의 친목 · 협동이 두터워져서 수복 후에도 귀향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정착하였다.
그후로 입도하는 도인이 더욱 증가하여 수천 호를 이루고 도장 부근으로 이주한 도인도 수백 호에 이르게되었다. 을미(乙未 : 도기 47, 단기 4288, 서기 1955)년 7월 초 7일에 국회 부의장 조경규가 부산도장으로 상제님을 찾아와 판잣집의 화재 취약성 문제 도시정비상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도인들의 이주를 부탁하였다.
이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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