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인뎀니티 창립자 잭 링월트는 보험업계의 규칙을 따르는 수순이 아닌, 판 자체를 재설계한 인물로 기억된다. 첫 직장과 심한 다툼을 겪은 뒤 다시는 보험을 팔지 않겠다 맹세했으나, 1930년대 초 개인 투자가 실패하고 업계로 돌아오면서 독자적 길을 모색했다. 초기 수익은 수수료 700달러에 불과했지만, 경쟁자들이 외면하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며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신참이 남들과 다르게 움직여야 생존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핵심이었다. 경쟁자들은 인맥과 학력, 결단력에서 우위에 있었으므로 똑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면 도태로 가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때 뼈아픈 진실이 링월트를 기묘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예로 미망인이 남편의 유산을 받으려 한 사건에서, 변호사가 과거 밀주업자를 변호했다는 사실과 남편 시신이 퓨젓 사운드 바닥에 숨겨졌다는 정보를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일류 보험사와의 보증 계약을 성사시켰다.
내셔널 인뎀니티 자체도 남들이 버린 기회에서 탄생했다. 당시 오마하의 독립 택시 회사들은 주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기존 보험사로부터 거부당하고 있었다. 링월트는 그들을 위한 적절한 보험 상품을 찾으려 시카고 보험 거래소 건물 꼭대기 층부터 모든 사무실 문을 두드렸고, 결국 Lloyd’s of London과 계약했다. 이를 계기로 1940년 12만 5천 달러를 마련해 택시 사업 및 기타 가입이 까다로운 사업에 특화된 회사를 설립했다. 기상천외한 사례도 있었다. 한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10만 달러짜리 보물찾기 이벤트를 열기 위해 보험을 원하자 링월트는 보험 계약뿐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단서들을 직접 작성했고, 보물을 직접 숨기기도 했다. 보물찾기 이벤트는 다른 도시에서도 인기를 끌었으나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대상이 나왔다. 샌프란시스코의 복잡한 교통 속에서 미행 수칙을 벗어난 탓에 사건의 변동이 있었지만, 내셔널 인뎀니티는 이 보물 찾기 이벤트를 통해 비용을 제외하고도 15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운 좋은 샌프란시스코의 탐정에게 지불한 금액은 5만 달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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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나쁜 위험은 없다. 다만, 잘못 매겨진 가격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