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늘 균형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결핍이 결핍을 부를 때 비극이 시작된다.
나르시스트는 관계의 초입에서 에코이스트의 이타심과 배려에 먼저 공포를 느낀다. 자신 안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포는 곧 기회로 전환된다. “저 정도로 이타적이면, 내 마음대로 다뤄도 되겠어.”
그는 자기중심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한다. 타인의 헌신을 약점으로 읽어내고, 자신의 이익 구조를 쌓아올린다.
반면 에코이스트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결핍인 자기주장, 자기애, 경계 설정의 힘을 나르시스트에게서 일시적으로 발견한다. 그 당당함이 매력처럼 보이지만, 곧 그것이 과장된 취약성을 감추기 위한 포장임을 알게 된다.
그제야, 에코이스트는 희생을 ‘미덕’으로 착각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 보존을 포함한 더 성숙한 감정 구조로 이동한다. 상대는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찾아온다.
이 관계는 그에게 자신을 잃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되찾는 방식을 가르친다. 나르시스트는 부러져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