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은 성장의 멈춤을 선언하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강렬한 시작을 알린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성장 서사의 공식을 배반하며, 일찌감치 세상의 이면을 간파한 한 소녀의 냉철한 시선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파헤친다.
주인공 '나'(진희)는 어머니의 충격적인 죽음과 아버지의 오랜 부재라는 근원적 상실감 속에서,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법을 터득한다. 삶과 의식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프롤로그는 서른 중반이 된 진희가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를 통해, 열두 살에 이미 완성된 냉소적 세계관의 뿌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 파인 것을 한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