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스토리보다 마지막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그런 영화다. 의외로 시작은 단순하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한 남자가 샌드위치와 페르시아어 책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죽음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배를 채울 음식이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주인공 질은 유대인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독일군 장교 코흐는 전쟁이 끝난 뒤 이란으로 가고 싶어 했고,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질이 페르시아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문제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기에, 질은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하루에 한 단어, 그리고 또 하루에 한 단어. 매일 밤 새로운 단어를 기억해야 하는 상황은 한 번이라도 틀리면 모든 거짓말이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는 총격전보다도 이 긴장감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 “오늘은 들키지 않을까?” “이번 질문은 어떻게 넘어갈까?” 관객 역시 질과 함께 숨을 죽인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 가짜 언어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질은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포들의 이름을 단어로 바꾸어 기억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빵이 되고 누군가는 나무가 되며 누군가는 하늘이 된다. 이름들은 사라지지 않고 언어가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생존하게 된 질은 자신이 만들어낸 페르시아어의 진실을 밝힌다. 수천 개의 단어는 사실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장면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다. 지워질 뻔했던 사람들을 끝까지 기억해 낸 한 사람의 증언이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름의 힘이었다. 사람은 죽을 수 있지만,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전쟁 영화이기도 하고 생존 영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기억에 관한 영화다. 살아남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고, 잊히지 않기 위해 그 언어 속에 남겨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 장면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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