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결국 서부전선에서 영/프군과 독일군의 소모전 대결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유튜브 영화 리뷰나 각종 역사 매체를 보면 수km를 진군하기 위해 수십만명이 죽었다는 것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을 설명하곤 한다.
이는 물론 비극적이지만 비극의 초점이 잘못되었다. 수 km를 진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수십만명이 죽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후 설명할 모든 전투는 수 km에 초점을 맞춘 결과가 아닌, 수십 만명을 소모시키기 위한 작전 계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베르됭 전투 베르됭 전투의 전개 독일의 베르됭 전투 구상은 참모총장이었던 팔켄하임에서 시작한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인구가 더 많기 때문에 그 인구 격차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프랑스로 하여금 희생을 무릅쓰고 병력을 투입하게 만들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때문에 독일이 "프랑스에게 절대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지역을 공격하여 소모전을 유도하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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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서부전선의 소모전 - 베르됭 전투와 솜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