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살면서 들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내 눈과 귀로 직접 맞닥뜨린 날이 다시 돌아왔다.
그날도 지금처럼 추웠지만, 그 밤과 오늘의 밤은 전혀 다른 온도를 갖고 있다. 그날의 비명과 함성, 그리고 지금의 환호까지.
우리는 그 모든 소리를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비상계엄 이후 국회에 들어갔고, 국회에 있는 동안 내 시간은 12월 3일에 멈춰있었다.
아마 광화문에 모였던, 애타게 기사를 확인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동일할 것이다. 늘 의원님의 뒤편에서 광화문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3월 16일이 되던 그날, 헌법재판소의 응답이 절실했던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뒤편에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야 했다.
보좌진인데 무대 위에 서도 될까? 이러한 걱정은 간절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국회에서 안국역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갔다. 국회 보좌진이 아닌, 국민의 이름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