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市井·저잣거리)이라고 했다.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수도가 보편화되면서 동네 우물은 대부분 유물이 되었다가 결국 폐정(廢井)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우물·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고 스토리가 지닌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삼일암 영천(靈泉)이 그랬다. 사찰의 규모가 전란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되면서 총림에 대중이 모이자 기존 샘물로는 수량이 부족했다.
필요한 만큼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보(洑)를 이용하여 계곡물을 막았고 상수도를 설치했다. 하지만 경내지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작은 샘은 사라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의 기억마저 희미해졌다.
영천은 글자 그대로 영험 있는 샘물이다. 곁에는 삼일암(三日庵)이 있다.
중창상량문에는 1203년 담당(湛堂)국사가 이 집을 창건하면서 ‘삼일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보정(寶鼎·1861~1920)스님은 〈다...
원문 링크 : [東語西話] 삼일암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