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숲길을 걷다가 문득 발밑에 돋아난 풀잎을 보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생명이라 부르고, 생물학자인 나는 세포 분열과 대사 작용의 결과물이라 읽으며, 동시에 명리학자인 나는 목의 생기가 대지를 뚫고 나온 형상이라 해석한다.
결국 같은 현상이다. 단지 언어가 다를 뿐.
과거에 현미경 렌즈 너머로 단백질의 구조를 들여다볼 때마다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아미노산들이 서열을 맞추고, 친수성과 소수성의 상호작용에 의해 정교한 3차원 구조로 접히는(folding) 과정...
그것은 마치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가 천간과 지지의 생극제화속에서 저마다의 역동적인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넓게 보면 아주 흡사하다고 볼수있다.
단백질이 제 구조를 찾지 못하고 엉기면 질병이 되듯, 사주에서 특정 오행이 고립되거나 과다하면 삶의 균형이 깨지고 삶의 병으로 나타난다. 생물학이 분자와 세포의 언어로 생명의 항상성(Homeostasis)을 증명한다면, 명리학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언어로 삶의 균형과 ...
원문 링크 : 명리학과 생물학은 같은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