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열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보폭으로 걷는 모습 속에서 생각의 소음은 차분해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초록의 무늬였다. 삶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의식이 떠오르며, 명리와 비이원성의 시선을 더해 한층 아득하고 명징한 문장이 다가온다. 고정된 ‘나’의 실체를 찾으려 들기보다, 사주명리를 통해 인생의 바다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성공과 불만족의 구속 속에 갇혀 있음을 본다. 그러나 십간십이지가 계절처럼 순환하듯, 성격과 기억, 상처, 욕망 역시 흐르는 변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철학의 무아와 서구의 순수 의식이 가리키는 목표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고정불변의 나를 상정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모양은 무대 위의 배우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다. 이때의 고통과 애착도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흘러간다. 과거의 치열한 시절이나 자식의 존재 역시 지나가는 인연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자식이나 인생이라는 움켜쥔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무아의 해방감이 찾아온다.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거대한 삶의 흐름이 통로를 통해 연주될 뿐이라는 깨달음이 남는다.
AKMU의 가사처럼 기쁨과 슬픔, 아름다운 마음들이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진다. 무아의 눈으로 보면 감정을 느끼는 주체는 없고, 기쁨이 일어나고 사라지듯, 슬픔도 스쳐 지나간다. 밤하늘의 잠시 터지는 불꽃처럼 인생의 막이 열리고 닫힐 때, 겉으로 드러났던 재물과 명예, 가족까지도 꿈처럼 흩어진다. 남는 것은 투명한 각성, 즉 텅 빈 바탕뿐이다. 이 꿈속에서 무거운 에고를 치켜세울 이유가 없고, 주어질 새로운 역할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과거의 큰 절망 속 배역이든, 현재의 우주를 읽어주는 상담가의 배역이든, 미래의 어떤 역할이든 간에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주가 나라는 안경을 통해 잠시 경험하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내가 없으므로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저녁에는 아내와 마주 앉아 시원한 차를 마시며 이 무아의 고요를 나누려 한다. 아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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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삶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