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이련영 청나라 말기의 환관 이련영(이영연,李連英) 사진 생몰년도: 1848~1911 그의 출신 및 환관 생활. 가난한 집안 태생이었으나 스스로 거세를 함으로서 환관의 길을 택했다.
일처리가 탁월했던지라 서태후(자희태후)의 편애를 받았으며 서태후는 이연영 외에 다른 환관이 시중을 들면 채찍질까지 하면서 내쫒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원래 환관 최고 지위 4품직을 넘어 2품직까지 오를 정도로 권세도 대단했던 인물이다.
아부와 처세에 있어서는 청나라 내 독보적 1위였다. 그의 최대 비결은 "윗사람을 모실때는 공손히 모시고 아랫 사람에게는 너그러움을 베푼다" 이연영도 부정부패를 일삼은 환관이었다.
온갖 요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연영에게 잘 보일려고 뇌물을 갖다바쳤던 데다가 변법자강운동 실패의 배후에도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도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명나라의 환관들과는 결이 다르다.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이미 다른 누군가가 말아먹고 있어서) --위키백과...
원문 링크 : 환관 이련영(이연영) 광서제 그리고 서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