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 을미사변 즉 명성왕후 시해 사건 을 흥선대원 군 과 명성왕후 사이에 일어난 사건 으로 꾸미려 계획 하고 조선군부 에게 일본 은 을미사변 즉 명성왕후 시 해 사건에 일본 은 가담 하지 않았다는 증명 을 요구하 고 받아 내었고 또한 김홍집 은 자신이 서명한 명성왕후 를 폐서인 한다는 조칙을 고종 의 이름 으로 발표 하지 만 왕태자 가 폐서인 은 말도 안된다며 태자 자리에 물 러 나겠다 반발 하자 김홍집 은 폐서인 조칙 을 취소하 고 명성왕후 를 빈 으로 승격 시킨다 발표 하지만 이미 민심 은 급격 하게 나빠진 상황 이었습니다. 또한 러시 아 를 중심 으로한 다른 나라들 또한 일본 에게 명성왕 후 시해 사건 의 책임 을 추궁 하는 상황 이었기에 일본 에게는 상당히 불리 한 상황 이었습니다.
이에 일본 은 어찌 조선인의 말만 믿냐 ? 항의 하지만 당시 사건을 목격 한것은 조선인 만 있는것이 아닌 궁 에 머물고 있던 서양인들 또한 머물고 있었기에 일 본 으로서는 어찌 할수 없었고 이...
원문 링크 : 고종 의 춘생문 사건 과 아관파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