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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3) - 이탈리아 르네상스, 고대의 부활

고대의 부활 르네상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고대의 부활’일 것이다. 이미 아랍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입되어 중세 스콜라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에게 멸망하자 수많은 희랍 고전들과 학자들이 대거 이탈리아로 유입되었다.[1] 르네상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고대의 재생(르네상스)였던 것이다. 특히, 옛 희랍 저서들은 숭배의 대상이 될 만큼 지식의 근원처럼 여겨졌다. 페트라르카는 읽을 줄도 몰랐던 ‘호메로스’를 숭배했고, 보카치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최초로 라틴어로 번역했다.[2] 시간이 흐를수록 원전에 대한 수요에 커지면서 필사, 번역이 크게 증가하였고, 더불어 이를 보관할 도서관도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작업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메디치 가이다. [3]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어 해독이 가능한 사람들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여 ‘스크리토리’(Scrittori)라는 경칭을 얻었다. 이런 고대문명에 활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이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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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4) - 인공국가의 탄생

인공물로서의 국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말하는 ‘인공물’이라는 것은 ‘타산’과 ‘의식’의 산물을 의미한다.[1] 기존의 혈연, 혈통과 그에 기반한 권위에서 우러나오는 정치체계가 아니라 철저히 한 개인에 의해 주도되고 자신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철저히 계산적이며 냉혹하게 통치하는 방식이 이탈리아에 정치형태에서 나타났다.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개인의 의식적 목적과 계산이 투영되는 현상이야 말로 근대 시민국가의 전초를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공물’이라는 단어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연상하게 한다. 홉스에 의하면 국가라는 조직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자연이란 만인투쟁이다. 국가는 이런 만인투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계약적, 인공물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의 전체정치에서 이런 인공적 성격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 전제군주들은 대부분 찬탈을 통한 권력이었으므로 혈족을 통한 동맹관계보다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와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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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5) - 개인의 발견

개인의 발견 이탈리아에서는 다양한 예술적 위인들의 등장으로 특정한 집단, 특정한 종파가 아니라 그야말로 ‘개인’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단테의 ‘신곡’같은 시대를 앞서는 독창적인 시문학은 이런 개성의 시대가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등장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심지어 당시의 유명한 소설가 프랑코 사게티의 칸초네[1]를 보면 피렌체에서 남성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는 문화까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또한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국 속에서 혈통과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시하게 된 배경 역시 개인, 개성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재로 소전제국, 대전제국에서 군주로 등극한 용병대장들의 모습 속에서 개개인의 특징들의 묘사, 기록들이 남아있다. 또한 이런 군주로부터 고용된 재사들, 비서관들, 시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차없이 자신을 버리는 군주들의 냉혹한 처신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자신의 혈통도, 자신의 신분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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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6) - 땅의 것의 관심과 사회의 변화

땅의 것의 관심과 사회의 변화 중세의 문학은 종교적인 주제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는 ‘풍속 묘사’가 문학작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것이다. 이 현상을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문학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치’가 담겨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인들의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표 주자로서 ‘단테’를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종교적인 색채를 지니면서도 일상생활을 묘사할 때는 그 어느 작품도 따라올 수 없는 상세함을 보이고 있다. ‘로렌초 마니피코’라는 시인은 농촌생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다. 보카치오는 전원 생활을 묘사하는 소설을 지었다.[1] 이런 땅의 것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관심은 세계일주에 대한 관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 십자군 전쟁과 동방무역을 통해 ‘모험가’ 정신으로 타고난 그들이었다. 이런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신을 가장 선구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마르코 폴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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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7) - 윌리엄 오컴의 이론

논리학 오컴은 명사를 규약적 기호와 자연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이란 단어는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규약적 기호’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다른 기호를 통해 이 ‘의미’를 나타낸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서로 다른 단어이지만 동일하게 나타내는 ‘의미’를 오컴은 ‘자연적 개념’으로 말한다. 오컴은 여기서 ‘자연적 개념’과 ‘명사’의 필연적 관계성을 다룬다. 특히 명사의 기능에 있어 ‘개인지칭’, ‘단순 지칭’, ‘질료 지칭’을 구분하면서 이를 잘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그 인간은 달린다.’라는 명제에서 ‘인간’은 특정한 개인을 ‘지칭’한다. 이를 ‘개인 지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에서는 ‘인간’은 모든 인간을 의미하며 ‘단순 지칭’이라고 한다. 결국 오컴은 명사는 ‘자연적 개념’을 필연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명제 안에서 특정한 ‘지칭 기능’을 얻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오컴은 명사가 ‘일차지향’과 ‘이차지향’으로 나뉠 수 있으며 ‘일차지향’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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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8) - 윌리엄 오캄의 윤리론, 정치

인간론 오컴은 인간론에서도 형이상학적 논의들을 비판하면서 영혼의 존재 증명 가능성 등을 비판한다. 특히 영혼은 인간의 본질, 정신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전통적인 내용들을 비판한다. 이런 논의는 결국 ‘나’라는 단일성, ‘그 인간’이라는 단일성과 그것을 구성하는 복합의 관계이다. 오컴은 정신, 영혼의 기능을 비물질적인 형상이나 영혼에 귀속시킬 어떤 논증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인간에 대한 단일성 자체도 증명 가능성을 거부했다. 오히려 오컴은 정신작용 혹은 인간의 형상을 물질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설명력은 오늘날 현대 과학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렇기에 오컴이 영혼의 단일성, 인간의 단일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더라도 영혼의 존재를 하나의 ‘신앙’이라고 말한 것이다. 특히 오컴은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 의지를 강조했다. 실재론자들의 하나님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지식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인간론도 주지주의로 간 것처럼, 유명론이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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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9) - 윌리엄 오컴과 기독교

언어와 신앙 오컴은 명제와 논리학을 다루면서 명사와 지칭을 구분하였다. 명사 자체가 ‘지칭’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명제 혹은 상황이 ‘지칭’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철학자인 비트켄슈타인과 동일한 맥락이다. 언어는 지칭을 보증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대 해석학은 ‘의미’조차 보증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빙크의 설교론에서는 이런 언어의 공허함에 대해 논하고 있다. 바빙크는 언어의 타락을 이야기하며 언어는 더 이상 참된 지칭을 잃어버렸고 형식만 남아버렸다고 말하였다. 이 세상의 수많은 언어들이 자신의 더러움을 포장하기위해 가면을 쓴다고 말했다. 심지어 교회의 언어조차 그렇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지칭하는가? ‘거룩’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거룩’과 닿아 있는가? 이에 괴테는 “사람이 의례적이게 되는 순간 곧바로 거짓말한다”고 말했다.[1]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의 절대성과 언어의 절대성을 구분해야 한다. 언어의 사용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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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10) - 니콜라스 쿠자누스

독일 태생으로 모젤의 쿠자에서 태어났으며 르네상스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공동생활형제단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여러 공의회에 참여하여 협상업무를 담당하였다. 유명한 저서로는 ‘박학한 무지’, ‘감추어진 신에 관하여’, ‘신의 직관’ 등이 있다. 쿠자누스에 대해서는 중세철학자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는 다양한 중세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플스턴은 르네상스 철학자로 분류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에서 근대 관념론, 어쩌면 라이프니츠의 합리론 체계도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재로 그의 철학적 내용을 살펴보면 위디오니시우스의 부정철학, 요하네스 에리게나의 자연관 등과 크게 연관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우주론에서는 근대 과학적 내용과의 유사성, 독립성 등도 보인다.[1] 통일성 쿠자누스에 따르면 신은 단일한 통일성, 완전한 조화이다. 이런 개념은 주로 ‘대립의 일치’로 불린다. 이 세상은 개별적 다수이며, 각 개별적 존재자들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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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11) - 쿠자누스 철학과 기독교의 차이

부정신학, 하나님의 본질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부정신학 자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을 품을 수 없다. 이는 다음 격언으로도 교회의 정신을 표현한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Finitum est non capax infiniti) 그럼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무어라 긍정할 수 없고, 오히려 아닌 것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내용들이 교의학,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본질이란 주제에서 다뤄진다. 특히 하나님의 본질이 비가해성이 그렇다. 바빙크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절대적으로 알 수 없으며 이것은 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라 하였다. 하지만 이런 부정신학,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교회의 고백을 불가지론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바빙크가 합리주의에 대해 불가지론의 역사적 가치를 긍정함에도 불가지론 역시 교회의 신앙과 다름을 구분한 것은 탁월한 시각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에게 이성은 죄로 인해 단순히 눈이 멀었거나 혹은 약해진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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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12) - 르네상스 자연철학자들1 (지롤라모 카르다노, 베르나르디노 텔레시오, 프란치스코 파트리찌, 톰마소 캄파넬라, 조르다노 브루노)

쿠자누스의 자연관이 신중심적일지라도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사상, 자연이 무한하다는 내용은 다소 진취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에 자연중심적인 세계관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등장하였는데 그들의 사상을 ‘자연철학’이라고 한다.[1] 그들은 자족적인 자연 그 자체를 강조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조르다노 브루노나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르가 있다. 프라카스토르는 힘과 운동, 지각 등을 모두 ‘원자론’을 사용하여 설명하려고 했다. 이것은 데모크리토스나 에피쿠로스 등 고대 기계론적 세계관의 부활이었다. 특히 그는 인식에 있어 인간의 수동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인간은 지각을 단순히 수용하면서 내적으로 상을 받을 뿐이다. 물론 자연철학자들 중에서 실험과 탐구를 강조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스콜라철학이나 사변적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철학자들은 순수하게 실험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때론 광범위하게 사변적 체계를 구성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코플스턴은 그들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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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13) - 르네상스 자연철학자들2(피에르 가상디, 아그리파 폰 네테스하임, 파라켈수스,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

피에르 가상디(Piere Gassendi, 1592 ~ 1655) 액상(Aix) 대학교에서 철학을 연구하였고 그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는 당시 르네상스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사상을 선회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체계에 반대하게 되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에피쿠로스’ 사상을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1647년에 ‘에피쿠로스의 삶, 도덕, 견해’(De vita, moribus et doctrina Epicuri libri)를 출간했다. 같은 해에 ‘에피쿠로스 철학 총서’ 또한 출간했다. 그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계승한 자 답게 인식에 있어 ‘감각적 기원’을 주장했다. 감각을 통하지 않고는 지성 속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본유관념을 주장했던 데카르트를 비판했다.[1]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부활시켰다. 크기, 형태, 무게를 가지고 있는 원자들이 텅 빈 공간에서 운동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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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 철학(14) - 자연철학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신앙과 과학, 계시의 영역 자연철학자들의 사상을 보면 그들이 순수하게 유물론적 태도를 견지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우주적 진리체계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처럼 세상을 이들의 운동과 법칙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유비를 통해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들은 중세의 여러 개념들을 이어받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개념들을 특히 신학이나 형이상학적 내용이 적용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대상들에 집중하여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자연철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의사였으며 화학, 연금술, 마술 등 물질적 대상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물론 중세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특징이기 보다는 11세기 이후로부터 학문의 발전과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며 불었던 학문적 자유에 의한 역사적 발전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의식 속에서 역시 경험주의 철학의 단초를 볼 수 있으며 때로는 합리주의 철학의 단초를 볼 수 있다. 계시가 아닌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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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 기독교와 이오니아 밀레토스 학파 기독교와 피타고라스 기독교와 원자론자 기독교와 플라톤 인식론 기독교와 플라톤 도덕론 기독교와 플라톤 정치론 기독교와 플라톤 자연과 예술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론 기독교와 스토아학파 기독교와 에피쿠로스학파 기독교와 회의주의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와 중세철학 위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키타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 켄터베리의 성 안셀무스 4. 성 보나벤투라 5. 토마스 아퀴나스 인식론 6. 토마스 아퀴나스 윤리론 7. 둔스 스코투스의 인식론 8. 둔스 스코투스의 윤리론 ※르네상스 르네상스를 다룸의 의미 2. 르네상스의 배경 3. 이탈리아 르네상스, 고대의 부활 4.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공국가의 탄생 5. 개인의 탄생 6. 땅의 것의 관심과 사회의 변화 7. 윌리엄 오캄의 이론 8. 윌리엄 오캄의 윤리 9. 윌리엄 오캄과 기독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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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 - 이오니아 밀레토스 학파

이오니아 지방은 지금의 터키로 신약성경에 아시아로 불리는 지방서쪽에 위치한다. 이쪽 지방은 당시 도리아인의 침략(주전 11c)에 상대적으로 안전하여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잘 존속할 수 있었다. 특히 지역적 특징으로 바벨론과 이집트와의 교류가 활성화되어 천문학, 수학 등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1] 그 유명한 호메로스 또한 이오니아 세계에 속한다. 당시 그리스본토가 도리아인들에 침략으로 처참해졌지만 이오니아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명이 보존되었고[2], 다시 본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특히 이오니아 철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밀레토스 학자들인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가 있다. 탈레스는 모두가 잘 알듯이 “만물은 물(水)로 이루어져있다.”라고 말한 사람이다. 그가 일식을 예측했다는 기록을 통해 학자들은 주전 6c경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6c경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즈음이다. 그가 왜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는지 알기란 쉽지 않으나 관찰(경험)에 근거하여 그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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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2) -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또한 이오니아 지방인으로서 남부 이탈리아 사모스섬과 크로톤에서 자신의 학파를 창시한 듯 보인다.[1] 피타고라스는 과학과 오늘날 합리주의적 철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신비주의적 종교성도 가지는 독특한 학파를 창시한다. 과학과 종교, 철학과 신화가 극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시대이지만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에 비해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 성향이 짖다. 과학적 정신은 분명히 이오니아 지방의 것이지만 신비주의적 경향은 트라키아의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았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한다.[2]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영혼 윤회설을 믿는다. 어떤 학자들은 플라톤이 이에 영향을 받아 전생을 믿게 된다고 하였다. 러셀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 오르페우스의 영향보다는 다른 식으로 설명한다. 러셀은 그들의 수학적 진리의 추구가 신비주의적 종교관을 낳은데 더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어원학자의(콘퍼드) 말을 인용하며 theory의 어원이 주신제(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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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3) -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제논)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의 귀족으로 “만물은 유전한다.”라고 주장했던 유명한 사람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철학 중 만물의 변화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편파적인 판단이라 주장되지만[1], 그의 사상의 핵심이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만물의 변화가 철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어떤 것을 고정된 의미로서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같다고 부를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한 개(a dog)가 끊임없이 동일한 존재자임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더 이 문제를 깊이 공감하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1년 전에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그 근거는? 결국 ‘같다’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언어이며 이 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세계에 동일성 혹은 일(一)은 존재하는가이다. 바로 이런 의문들이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시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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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4) - 엠페도클레스, 원자론자,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 원자론자, 아낙사고라스는 모두 파르메니데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서 그의 의견을 자기 나름대로 변용한 사람들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존재는 생성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을 계승하였다. 그럼에도 변화와 운동이라는 감각적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파르메니데스의 의견과 조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것이 바로 불변하고 나뉠 수 없는 ‘원자’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성은 ‘레우키푸스’와 ‘데모크리토스’로 대표되는 원자론자들과 같다. 이들은 불변하는 ‘원자’들의 조합을 통해 세상의 변화, 운동, 생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언제나 줄지도 늘지도 않는 영원한 원자들의 세계에서 이들의 혼합과 분리가 존재세계의 실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엠페도클레스와 원자론자들은 기존의 자연철학자들보다 조금 더 세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엠페도클레스와 원자론자들의 차이는 엠페도클레스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로 ‘4원소설’을 주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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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5) - 플라톤 인식론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의견 ‘만물은 모두 변한다.’를 공리로 정하고 그의 철학을 시작한다. 번드런트 러셀의 서양 철학사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감각적인 세계에 영원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인 학설을 이끌어 내었다.”[1] 플라톤은 지식, 존재란 시공간을 초월한 변함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언제나 변화를 전제하는 감각에서는 진리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상은 피타고라스나 논리, 이성을 강조한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러셀은 또한 다음과 같이 밝힌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실재는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논리적 근거에 입각해 모든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철학체계를 구축한데에는 시대적 역할도 무시 못 할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적 인식관, 민주주의 정치로 희생당한 소크라테스를 보며 아마 더욱 이러한 철학관의 보편화가 필요하다 여겼을 것이다. 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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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6) - 플라톤의 도덕론

이 장에서는 플라톤이 인식론에서 어떻게 도덕론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는지, 그리고 이런 원리가 인식론적으로 기독교와 다름을 역시 논증하며, 그 후에는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해 논할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실재는 앎이다. ‘선’, ‘용기’, ‘절제’ 등 우리가 흠모할만한 모든 덕목들을 우리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우선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우리가 못 행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삶의 완성은 저 덕목들의 이데아를 알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로 플라톤의 도덕관을 주지주의라 말한다. 그의 저서 ‘라케스’에서는 용기란 무엇인지 변증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저서 ‘프로타고라스’에서는 덕은 지식이며 교수(敎授)가능하다 말한다. ‘국가’에서는 정의란 무엇인지 변증법적으로 다뤄지며, ‘파이드루스’에서는 사랑의 본질이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코플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은 덕과 지식의 소크라테스적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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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7) - 플라톤과 정치

플라톤은 ‘국가’란 저서에서 과연 국가의 다스림, 곧 지도자는 어떻게 배출되는지부터 국가는 어떻게 경영되어야 하는 지까지 다룬다. 플라톤에게 있어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는 개인에게 있어 실현해야할 정의인 윤리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한 가지 원리가 개인과 국가까지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플라톤은 하나의 사상을 이룬 사람이라 평가되는 것이다. 그는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먼저, 국가에 나타나는 대로의 정의와 비정의의 본질을 탐구해보세. 그런 다음에 두 번째로, 더 큰 것에서 출발하여 더 작은 것으로 나아가며 그것들을 비교해봄으로써, 개개인에 나타나는 정의를 마찬가지로 탐구해보세”. 플라톤은 역시 변증법을 활용하여 국가에서 실현해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논한다. 플라톤이 최고의 선으로 다루었던 것이 바로 조화였다. 각각의 기능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게 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최고선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이 국가론에도 확연히 들어난다. 고로 플라톤에게 윤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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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8) - 플라톤과 자연 그리고 예술

플라톤은 자연의 여러 원리에 대해서 ‘티마이오스’에서 다루며,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파이드루스’, ‘법률’, ‘국가’ 등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진다. 우선 자연에 대해 논해보자면 플라톤에게 있어 자연, 감각세계는 위 인식론에서 다루었듯이 억측과 신념의 세계이다. 즉, 완전한 지식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자연을 다루는 책을 쓴 이유를 철학자 코플스턴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가 아카데미아에서 점증하는 과학적 관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며, 그가 물질계의 형상들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물질계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할 필요를 느꼈음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우리는 늘 자연세계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아무리 진리의 세계가 이 감각세계와 상관이 없더라도 현재 ‘나’는 이 감각세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플라톤도 자연에 대해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감각세계에 대한 편견으로, 자연학은 진정한 의미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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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9) -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업적 중 가장 탁월한 것은 바로 그의 ‘논리학’일 것이다. 주어와 술어, 종개념, 유개념, 종차, 삼단논법 등이 그의 논리학 주요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이 사물이 정신에 부여되었을 때 정신이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는 논리학이 정신 내에, 정신만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의 반영으로서, 존재적으로 여기기도 했다.[1] 예를 들어 그는 모순율, 동일률은 단순한 인간의 사고구조가 아니라 세계구조라 했다. A = A라는 동일률, A와 not A는 같지 않다는 모순율은 이성법칙일뿐만 아니라 세계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사물의 변화를 그 사물 자체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A라는 존재가 B로 변화한다면 동일률은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동일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의 철학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리석이 조각상으로 변화하는 것은 대리석이라는 질료 안에 조각상이라는 형상이 내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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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0) - 아리스토텔레스와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인 저서 「형이상학」은 그의 철학, 사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범주론」, 「명제론」, 「해부학」과 같이 객관적인 대상에 대한 저술과 대비되는 전제를 아우르는 해석학인 것이다. 이 저서에서 그의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며, 어찌 보면 그의 모든 저술을 해석할 수 있는 근본 토대라고 해야 할 것이며, 엄밀한 자연과학과 철학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인 만큼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대략적인 그의 철학적 방향성을 알려주나, 정확히 어떤 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도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아랍의 철학자 아비센나는 그것을 40번 읽었으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1] 그러므로 개략적인 그의 방향성, 주된 논점만을 이 글을 통해 파악해보자. 우선 그는 인간의 앎에는 등급이 존재함을 언급하며 형이상학의 목적을 밝힌다. 그 등급이란 단순히 경험적인 앎이 있고, 원리적인 앎이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아픈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아픈 사람의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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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3) -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하면 떠오르는 유명인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와 그의 저서 ‘명상록’이다. 그는 로마의 위대한 황제이며 동시에 초대 기독교 박해자 중 한명이었다. 그의 명상록에는 운명에 대한 순응, 이성에 대한 찬양, 덕에 대한 관조가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분명히 스토아 철학자로서 면모이다. 또한 사도행전 17:18에 스도이고 철학자로 변역된 ‘스도이고’가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더불어 사도행전 18:12에 나오는 아갸야 총독 갈리오는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동생이다. 이처럼 그 당시에 스토아 철학은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다. 스토아 학파를 창시한 자는 제논이란 사람이다. 기원전 336년에 키프러스에서 태어났고 아테네에서 사망했다. 스토아란 이름은 그가 강연을 베풀었던 얼룩덜룩한 강당(stoa)에서 유래되었다.[2] 스토아 철학은 극단적 합리주의이며, 극단적 일원론의 예이다. 그들은 세상을 둘로 나누지 않고 단 하나의 세상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일원론적 세상은 전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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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4) -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학파는 그 창시자 에피쿠로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학파는 사도행전 17:18에 에비구레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2년에 사모스에서 태어났으며, 한 때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에게 물려받은 것이다.[1] 에피쿠로스학파는 스토아학파와 비슷하게 교의, 철학적 원리 확립에 강조점을 두는 것보다 실천적인 윤리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는 범헬라주의, 세계시민주의, 로마의 실용주의를 통한 개인윤리의 관심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2] 그래서 고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교의적 철학전통이 후대에 갈수록 점차 실용주의적 윤리론으로 빠르게 강화되었다는 것이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통해 더 분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든 스토아든 그들의 윤리적 체계가 바로 교의에 뿌리 두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윤리의 기초는 윤리자체가 아니라 사상의 샘이다. 스토아주의가 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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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5) - 회의주의자들

회의주의는 고대의 소피스트, 아낙사고라스에서 나타났고 여전히 철학사에 그 이름을 드러낸다. 이 당시의 회의주의는 피론(Pyrrho), 플라톤의 후예들인 중기 및 신아카데미아 학파에서 나타난다. 이들 회의주의는 이성과 감각지각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 이성은 사물들의 내부 실체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1] 그들은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삶의 방식은 모든 판단을 유보한 체 가장 높은 개연성을 따라 사는 삶이다. 중기의 아카데미아의 아르케실라오스는 어떤 표상이든 그 표상에는 강렬한 주관적 확실성이 담지되므로 참된 객관성은 있을 수 없다고 하여 회의주의를 다시금 표방했다. 신아케데미아에서는 키레네의 카르네아데스가 회의주의를 주창했다. 카르네아데스의 회의론도 감각지각의 진리성이 불가하다고 생각했고 이 감각에 근거한 모든 이성판단 또한 오류투성이라 생각했다. 또한 인간은 그 어떠한 것도 증명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증명은 어떤 전제를 필요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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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6) - 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는 이 사상의 대표자 플로티누스가 플라톤을 계승했으며, 플라톤을 매우 존경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 교의에 영향을 끼쳤다고 학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신적 섭리, 신의 속성과 존재를 분리하지 않는 일자, 피조물과의 구별 등은 상당히 기독교적 교의와 유사해보인다.[1]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권위적인 고대 신학자인 어거스틴이 신플라톤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2] 이렇게 세상학문이 기독교 교의와 철학을 혼합하려 할 때, 우리는 주의 깊게 이런 철학사조들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조의 근본적인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신앙과 무엇이 다른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적 철학은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소개된다. 그에 의하면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적 철학에 종교적 요소를 종합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철학과 종교는 하나였으며, 플라톤적 이데아 혹은 일자가 그에게 인격적 신으로서 교제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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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이유

철학자들의 사상 철학 하는 이유 철하기 2016. 2. 28. 20:00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철학을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고리타분하다, 지루하다, 나와 상관없다? 사실 철학은 졸리고 어렵고 지루하다. 이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매일 철학을 하고 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할지 그 모두가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거창한 이론과 단어가 아니다. 바로 내가 사는 모습,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철학을 멀리하게 됐을까? 어쩌다 이런 사태에 이르렀을까? 철학을 마치 시험 보듯 대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설을 비판했으며... 등등. 철학은 시험이 아니다. 가뜩이나 시험 많은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시험 수를 늘리지 말자. 철학과 가까워지고 친해지려면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철학의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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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무엇을 알 수 있나?

철학자들의 사상 철학으로 무엇을 알 수 있나? 철하기 2016. 2. 28. 20:2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철학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무수히 많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나는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나는 날 잘 알고 있을까?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자.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를 한 번 정의 내려보자. 정의를 내렸는가? 어떤 이는 이렇게 답했을지 모른다. 나는 지성을 갖고 육체를 가진 존재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그 지성은 나의 지성이지 나가 아니다. 육체는 나의 육체이지 나가 아니다. 내가 나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실 이런 질문을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 이것이 없으면 내가 아닌 것, 이를 철학적 용어로 '본질'이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데카르트는 인간의 본질은 '사유'라 답한다. 사유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하지만 '사유한다.'는 보편적인 현상이지 나와 다른 이를 구분해주지 않는다. 나와 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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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소개의 원칙

나는 철학자 사상을 소개하려 한다. 그런데 소개를 하려 할 때 무턱대고 소개하면 안 된다. 내가 이해한 내용과 그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마치 그 사람의 주장을 내가 생각한 것처럼 말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즉, 바로 이해하고, 그가 말한 것처럼 말하는 '방식' ,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위해 규칙을 세웠다. 그 규칙이란 아래와 같다. 1) 원서나 권위자의 책을 읽지 않으면 소개하지 않기. 2) 내가 이해한 내용의 타당성을 위해 원서나 권위자의 책을 인용하기. 기존의 인문서적들은 위의 두 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상을 쪼개고 갈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원서를 인용하지 않았기에 마치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직접 그 사상가들과 대화해야 하는 데 사상가는 사라지고 오직 중개인만 남아버렸다. 그러기에 충실히 위의 원칙을 지키며 글을 작성하려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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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1_ 시대상황

르네 데카르트, 그는 철학사의 빛과 같은 존재이다. 특히 근대 철학의 물꼬를 열었다. 르네 데카르트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근대는 아직도 중세 스콜라철학과 그 근본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철학사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떤 존재보다도 높히 올라가게 되었으며, 이성의 위상 또한 끝없이 올라갔다. 근대 철학의 뿌리인 그의 철학은 또한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의 합리론과 존 로크, 버클리, 흄 등의 경험론으로 이어진다. 이제 그가 살았던 시대를 먼저 살펴보면서 그의 철학에 발을 디뎌보자. 폭발 직전 그는 16~17세기 사람이다. 이 시기는 근대 사상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유럽은 근대 이전까지 종교의 영향이 컸다. 특히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 철학이 지배적이었다. 스콜라철학은 신의 이해뿐만 아니라 시대를 흘러가면서 세계관까지 확장되어 그야말로 모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당시 스콜라 학자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우주가 운행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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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2_ 철학방법

르네 데카르트의 사상을 소개하기 전에 그의 저작들을 먼저 소개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이다. 이 세 책은 서로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설명하는 방식이나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데카르트의 사상은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넷은 바로 정신, 물체, 신, 도덕이다. 그리고 그의 저서 대부분이 정신, 물체, 신을 다루며 도덕은 따로 구분하여 [정신을 위한 지도]나 [정념론] 등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사상의 정수인 정신, 신, 물체를 소개할 것이다. 그의 철학적 방법 그의 철학은 철학적 방법에서 시작된다. [방법 서설]이 기록된 이유도 바른 철학적 방법을 우선 제시하고 그 방법에 따라 철학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왜 새로운 철학적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였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 ... 따라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러한 것이 철학에 하나도 없음을 보고,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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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3_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중에서 참된 것을 찾는다. 데카르트는 이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 작업은 마치 '모래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는 [성찰]에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한다. [어제의 성찰로 나는 대단한 회의에 빠졌으므로 이제 나는 그것을 잊지도 못하게 되었고, 더욱이 어떻게 그 회의를 해결할 것인지도 알 수 없어 마치 별안간 소용돌이치는 심연 속에 빠져버린 것처럼 혼란해져서 발을 바닥에 댈 수도 없고...] - 성찰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문 회의의 질문은 계속된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질문은 '사유란 무엇인가?'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눈이 번뜩 뜨인다. 내가 의심하는 순간에도 나는 사유를 하고 있다. '나는 사유를 하고 있다'를 부정해도 그 부정하는 것조차 사유이다. 데카르트는 이마를 딱 치며 바로 유레카를 외쳤다. [... 사유한다는 것을 어떨까? 여기서 나는 그것을 발견한다. 사유가 그것이다. 이것만은 나한테서 때어낼 수 없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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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4_ 신 존재 증명

그는 모든 사실을 회의하였다. 그러던 중 한가지 명백한 사실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나는 사유한다'이다.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그는 이제 나의 정신, 나의 사유를 통찰하기로 결심한다. 과연 사유란 무엇일까? 과연 사유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의 저서 [성찰 3]에 이 질문의 대한 답이 잘 나타나있다. 데카르트는 성찰 3 전반부에서 자신의 철학 방향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의심을 사라지게 할 방법이다. 사실 우리는 그 이전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 인지한 사물은 명백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확실히 인지했다고 하는 그 사물 자체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분명 정신에 관념이 있다. 그러나 그 관념과 똑같은 것이 나의 외부에 있을 거라고 우리는 함부로 확신하고 있었다(외부 존재의 필연성). 그렇다면 이 관념은 내가 만들었을까? 그냥 상상의 산물일까? 그 모든 것이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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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5 _ 앞으로 전진!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 성찰 4부 처음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사유 과정을 정리한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에 내 정신을 감각에서 분리시키는 데 익숙해졌고, 또 물체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정말로 지각되는 것이 극히 적지만,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것이, 신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것이 인식된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해 왔으므로 이제 나는 아무런 곤란도 없이 사유를 감각적인 것, 상상적인 것에서 돌려 아주 이지적(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으로, 일체의 물질에서 분리된 것으로 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인간의 정신이 사유하는 것이고, 길이, 넓이 및 깊이에 걸친 연장을 가진 것이 아니며, 또 그 밖에 물체에 속하는 그 무엇도 갖지 않은 것인 한, 나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 그 어떤 물체적 관념보다 훨씬 판명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의심한다는 것, 즉,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것이라는 데에 내가 주의하면 독립된 완전한 실유, 즉 신의 관념이 아주 명석판명하게 내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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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철학자들의 사상 공지 철하기 2016. 3. 20. 19:36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기존의 글을 읽기 쉽도록 다듬었습니다. 한번 더 읽으면서 데카르트의 철학을 음미하시길. 또한 하루 빨리 데카르트 철학을 끝내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철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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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6_ 물체의 존재

데카르트는 성찰 5에서 이제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한다. [신은 기만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내가 명석판명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략)... 내가 흔히 잘못하는 것으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일까?... (중략)... 혹은 내가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즉 내가 지금 사유하는 모든 것은 잠 잘 때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중략)... 이와 같이 하여 나는 모든 지식의 확실성과 진리성이 오로지 참된 신의 인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는 것이다. 나는 신을 알기 전에는 다른 무엇에 대해서나 완전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성찰 5 이제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하게만 인식하면 됐다. 그가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존재(사유)와 신을 인식했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인 물체로 자신의 시선을 옮긴다. [남은 것은 물질적인 사물이 존재하느냐 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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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7_ 데카르트 철학의 한계

데카르트의 철학은 토대가 이제 완성됐다. 나는 존재하며 그로 인해 신의 존재가 증명됐다. 그리고 신의 존재 증명을 통해 물체의 존재(세상의 존재)가 증명됐다. 이 사실은 이 세상에는 진리가 있고 이 세상은 탐구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이 제정했으니 기만적인 요소가 있을 리가! 결국 나는 명석판명한 인식만을 추구하면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다. 데카르트 철학을 정리하자면 이와 같다. 하지만 그는 성찰 6에서 아래와 같은 의문점을 발견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은 이런 고통이나 굶주림이나, 목마름 등의 감각으로써, 마치 선원이 배 안에 있는 것처럼 내가 신체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이 신체와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말하자면 혼합되어 있어서 이것과 어떤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 성찰 6 데카르트는 우리의 본질은 사유라 말한다. 그런데 감각적인 요소가 신의 증명을 통해 실재함이 증명되었다. 나의 본질은 사유이지만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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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8 _ 도덕론(마지막)

항상 모든 철학 체계의 마지막은 도덕론이다. 어떤 철학 체계에서 도덕론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철학이 세상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도덕론이 없는 철학은 사실 별 쓸모없는 철학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행동 지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행동 지침에는 항상 당위성이 필요하다. 그 당위성을 바로 철학 체계가 증명한다. 데카르트도 역시 자신의 철학 체계를 통해 도덕론을 제시한다. 그의 도덕론은 [정념론]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물심 이원론이다. 즉, 사유와 물체는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죄를 짓거나,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은 사유와 관계하지 않고 물체(신체)와 관련되어 있다. 신체가 없는 사유에는 이러한 것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신체가 있기에 정념을 갖고 있고, 이 정념이 우리가 죄를 짓게도 한다. 이렇게 정념은 신체에서 나타나기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신체에게 있어 정념은 능동이지만 사유인 나에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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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해주세요.

나의 생각 질문해주세요. 철하기 2016. 3. 21. 20:15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기에 설명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포스트가잘 이해가 안된다면 이 곳에 질문을 남겨주세요. 빠르게 답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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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와 자연 철학자들1_ 시대 상황

오늘부터 탈레스를 위시한 자연 철학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마 탈레스라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것입니다. 탈레스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참으로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고대 철학을 대할 때는 내용의 타당성을 보기보단, 그들의 의식 체계가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고대 그리스의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미노아 문명과 크레타 문명 시절부터 활발한 교역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집트나 아시아권에서는 청동기 문화가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문화는 자연스레 그리스 지역으로 유입되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 내에는 청동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청동을 외부로부터 수입해서 써야 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 지역과 가까운 크레타섬에서 청동기 문화인 미노아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크레타뿐만 아니라 유럽의 지역적 특성상 당연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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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와 자연 철학자들2_ 탈레스 철학

이번 글에서 탈레스의 철학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의 철학의 영향부터 시작해서 그의 주장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보통 어떤 철학자를 소개할 때는 그의 철학 사상에 대한 내용이 앞섭니다. 그러나 저는 탈레스의 철학적 내용보다는 그의 철학 방식과 그가 그리스 세계에 미친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런 순서를 채택하였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탈레스의 영향과 그의 사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탈레스는 그리스 합리 철학의 효시였으며, 또한 자연 철학자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만큼 그리스 세계에서 탈레스의 철학 방법은 중요했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철학 방법을 이용했을까요? 철학의 권위자인 한 교수는 자연 철학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변화하는 다양한 현상계를 꿰뚫고 있는 불변의 통일적 원리를 찾고자 했다." 바로 이 불변의 통일적 원리를 찾고자 하는 자세와 그 방법들이 철학사에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한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평소에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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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와 자연 철학자들 3 _ 아낙시만드로스

오늘은 탈레스에 이어 아낙시만드로스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소개하는 자료는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참고하였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한 자료는 탈레스와 같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러셀의 철학사가 비교적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여, 그의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바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와 같이 밀레토스를 대표하는 자연 철학자입니다. 그도 역시 이 세상을 파악할 때 이렇게 묻습니다.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하지만 탈레스와 달리 물이 아닌 다른 물체가 이 세상을 구성한다 주장했습니다. 그 물질이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인 '아페이론'입니다. 이 물체는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는 실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제일 실체는 낯익은 다양한 물질 형태로 변하고 그러한 물질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설명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어쩌다 이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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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와 자연 철학자들 3_ 아낙시메네스

밀레토스의 마지막 철학자 아낙시메네스, 그는 과연 어떤 사상을 펼쳤으며, 철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지금부터 그 진상을 살펴봅시다. 그도 역시 자연 철학자답게 공기가 만물을 구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탈레스에게 있어 제일 실체는 물이었고, 아낙시만드로스는 그것은 아페이론이었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그것이 공기라고 한 것입니다. 과연 아낙시메네스는 왜 공기를 제일 실체로 생각했을까요?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주장과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아페이론이라는 물질을 생각해 낸 것처럼, 아낙시메네스 또한 어떤 한계점을 느끼고 그 한계를 해결하고자 제일 실체를 '공기'라 말했을 것 입니다. 우선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아페이론'이라는 제일 실체는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낙시메네스의 입장에서는 제일 실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장한 대로 수많은 변화들과 다양한 물체의 존재를 입증해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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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와 그의 사상

이제까지 밀레토스 학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적 사고는 이탈리아를 위시한 남부 유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양한 철학적 사고로 다시 꽃을 피게 됩니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피타고라스'입니다. 이제 피타고라스가 어떤 주장을 펼쳤으며, 그가 철학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봅시다. 러셀은 철학사에서 피타고라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합니다. 심지어 근대에 이르는 모든 합리 철학의 원류가 피타고라스라 말합니다. 플라톤, 성 아우구스투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서는 종교와 추리, 즉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무시간적인 영원한 존재를 향한 도덕적 염원과 논리적 동경이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이러한 결합이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유럽의 주지주의 신학과 더 단순한 형태인 아시아의 신비주의를 구별하는 근거이다. - 러셀 러셀이 왜 그렇게 피타고라스의 철학을 강조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면서 피타고라스의 중요성을 실감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학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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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대립 1- 헤라클레이토스 vs 파르메니데스

그리스 철학은 자연 철학자로 시작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 철학들은 앞으로 더 많은 철학적 견해들로 발전합니다. 그렇다고 이 견해들이 마치 모래알처럼 서로 아무 관련이 없진 않습니다. 현대에 좌우 대립, 구신 대립이 있듯이 그리스 철학에도 좌우 대립이 있었는데 바로 그 좌우를 대표하는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입니다. 물론 이 둘이 서로 만나 치열하게 대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위 두 사람의 주장이 완전히 상반 되기 때문입니다. 철학의 좌우 대립. 사실 그동안 살펴보았던 철학자들은 성격으로 분류하자면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중도에 해당합니다. 뒤에 등장하는 철학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이 두 철학자는 인간 사고의 양 극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현상은 철학사에 어떤 의의를 갖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 두 사람의 대립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후에 각 철학자의 주장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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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대립 2 -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

지난 시간에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페르메니데스의 대립이 철학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러셀에 의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 귀족 출신으로 그의 고향은 이오니아 섬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밀레토스 학파를 계승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 세계를 고안냈죠. 만물은 유전한다 -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의 핵심 사상은 바로 만물의 유전입니다. 쉽게 말하면 '변화'이죠. 혹은 이를 영어로 'Becoming'이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생성(生成)'이라 번역합니다. 즉, 그는 이 세계의 모든 물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생성되어 다른 물질이 된다 주장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흐르는 물, 바람은 어디에 고정돼있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식물조차도 하루하루 성장해가고 늙어가며 변화합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변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 사상은 단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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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대립 3 - 파르메니데스

지난 시간에 헤라클레이토스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변화'를 Key Word로 삼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오늘 소개할 철학자는 세상을 '일자'로 이해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파르메니데스'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여 이런 사유 체계를 주장하였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러셀에 의하면 그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엘레아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플라톤의 책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에 나이가 많은 들었던 파르메니데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러셀은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파르메니데스의 철학 체계에서 플라톤 철학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적 핵심은 그의 저서 [자연론]에 잘 나타납니다. 그의 따르면 감각은 우리를 속입니다. 태양은 실제로 지구보다 큰 행성입니다. 그러나 감각만으로는 태양은 내 엄지손가락보다 작습니다. 그리하여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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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페도클레스와 그의 사상

오늘은 엠페도클레스를 소개하려 합니다. 철학사에서 그렇제 조명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 자신만의 특별한 철학체계를 주장했던, 엠페도클레스. 지금부터 그의 사상을 알아봅시다.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의하면, 그는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대상으로는 기원전 440년으로 파르메니데스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그 지역은 당시 민주주의 지지자들과 참주제 지지자들이 격렬히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갖기 위해 페르시아나 카르타고와도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다른 편이 권력을 갖게 되면 상대편은 무참히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엠페도클레스는 민주제를 지지하였고, 그로 인해 그곳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는 추방된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축한 듯 보입니다. 러셀은 엠페도클레스의 업적을 과학적인 측면과 철학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의 과학 가설과 철학의 연관관계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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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와 사상 1_ 시대 상황

오늘부터 아테네 철학자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테네 철학자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혹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에는 그 외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낙사고라스나 혹은 소피스트의 대표인 프로타고라스를 들 수 있겠네요. 이렇게 아테네는 한가지 생각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철학들이 공존한 곳이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입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 무엇을 담아내려 했을까요? 라파엘로 당시는 르네상스 시기로 중세 시대에 지친 예술가들이 고대의 자유와 인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델이 바로 아테네였습니다. 서로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나누며 평화를 누렸던 그 시기를 라파엘로는 흠모했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아테네는 위 그림처럼 다양한 사상이 공존했습니다.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오늘은 아테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추적해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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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와 사상 2 _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는 페리클레스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처참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무너진 아테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세계 곳곳의 건축가와 철학자들을 초청합니다. 그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아낙사고라스'입니다. 러셀에 의하면 아낙사고라스가 최초로 아테네에 철학을 소개해주었다 합니다. 또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페리클레스는 과학자인 아낙사고라스에게 마음이 쏠렸던 듯하다. 이로 보아 아낙사고라스가 아테네에 전한 여러 철학적 지식은 그곳에 있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그는 이오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학문적 계보 또한 자연 철학자들을 따릅니다. 특히 러셀은 그를 아낙시메네스 학파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은 공기로 이루어졌으며, 공기의 응축 정도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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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론자들과 그들의 사상

아테네 철학자들을 소개하다, 갑자기 '원자론자'들을 소개하여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원자론자들을 갑자기 소개하는 그 이유는 아테네 철학자들과 활동하는 시기가 비슷하고, 이제 곧 등장할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전에 '원자론'을 소개해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소피스트 다음에 소개하기도 조금 애매하고, 그렇다고 소크라테스 다음에 소개할 수도 없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나름 이유가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원자론자 중 대표자인 데모크리토스는 상당히 관찰을 중시한 철학자로서, 러셀은 데모크리토스가 자연 철학자를 계승한 레우키포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데모크리토스는 관찰과 합리성을 중요시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자'로 워낙 알려져 아마 익숙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분할할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그의 주장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왜 우리는 데모크리토스가 왜 이러한 주장을 하였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마치 나 자신이 데모크리토스가 돼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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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과 사상 3 _ 프로타고라스와 소피스트

오늘은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을 보며 소피스트들은 어떤 사상을 가졌으며, 어떻게 아테네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소피스트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아테네의 상황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는 그리스의 중심이 되어 매우 번창했습니다. 또한 페리클레스 지도 아래, 민주주의도 발전하여 아테네는 그야말로 풍요와 자유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러셀에 의하면 당시 아테네의 인구는 23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특히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아테네는 배심원을 두어 재판을 했습니다. 배심원은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이는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원고와 피고는 개인 자격으로 출두하여 배심원들에게 피고가 유죄임과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배심원을 설득하는 웅변술이 재판의 승패를 갈랐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피스트'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소피스트들은 원래 소송을 당한 사람이 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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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2) - 르네상스 배경

르네상스 직전의 특징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기간에 발생되었던 여려 현상들, 곧 ‘전제정치’, ‘공화국’의 등장, ‘개인’의 발견 등은 이전에 발견할 수 없는 큰 변화라 말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적절하게 느끼기 위해 르네상스 이전에 특징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교황권 중세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교황의 등장과 그 권력의 부침일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전제정치의 강화, 공화국의 등장, 종교개혁의 정교분리는 교황권을 고려하지 않고는 적절하게 이해될 수 없는 현상이다. 교황은 학자마다 의견을 달리하겠지만 대체로 그레고리 1세가 대교황으로 불리면서 최초의 교황이라고 여겨진다. 이 교황권은 특히 그레고리 7세(1073-1085), 이노센트 3세(1198-1216), 보니파세 8세(1294-1303) 때 왕권과 대립하면서 그 권한이 절정에 이르렀다.[1] 특히 그레고리 7세때 ‘카놋사의 굴욕’은 이러만 역사적 맥락을 잘 보여준다. 이노센트 3세 때는 영국의 존 드 그레이(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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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1) - 위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위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Dionysius Areopagita) 위 인물은 사도행전 17:34절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라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초기 교사들에게 많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접두어로 僞(위)가 붙은 것을 보면 알겠지만 사도적 문서가 아닌, 후대 저작으로 오늘날에는 인지되고 있다. 코플스턴은 그의 저작이 5세기 것이라 추정한다.[1] 그의 대표적인 저작에는 『천체위계론』, 『신명론(Divine Names)』 등이 있다. 그는 철저히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으며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교리를 조화하려고 하였다. 그의 저서는 후대에 신플라톤주의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그의 영향으로 많은 학자들이 신플라톤주의적으로 기독교교리를 해석하게 되었다. 후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요한 스코투스 에리게나(Johannes Scotus Eruigena)이다. 하나님의 인식 신플라톤주의자답게 그는 하나님의 인식을 철학적 사색을 통해 접근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긍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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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2) -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 코플스턴은 9세기에 가장 주목할 인물로서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를 꼽았다. 그에 따르면 에리게나는 평지 한 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처럼 두드러져 있다고 한다.[1] 그는 아일랜드에 태어났으며 ‘에리게나’의 의미는 에린의 사람으로서 에린은 아일랜드의 옛 이름이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4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그 유명한 샤를 대제를 만났으며, 궁정학교의 요직을 차지한다. 이 기간에 그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위디오니소스 저서 『신비신학』을 라틴어로 번역한다. 하지만 정작 에리게나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자연 구분론』이다. 코플스턴에 의하면 이 책의 의미에 대해서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대체로 그는 이 책에서 위디오니시우스와 마찬가지로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기독교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는 위디오니시우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융합하는데 절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사상을 다루는 것으로 기독교가 철학과 섞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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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3) - 켄터베리의 성 안셀무스

켄터베리의 성 안셀무스 성 안셀무스는 1033년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아오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네딕트 수도회[1]에 들어갔으며 그 후 베크 수두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어거스틴적이라 불린다.[2] 그가 어거스틴적이라 불린 이유는 ‘나는 알기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고 프로슬로기움 1장에서 고백하면서 어거스틴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보다 신앙을 우선시 했다. 신앙은 전제이며 이 전제 속에 빛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철학, 변증은 그 믿은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3] 이러한 과정에서 쓰인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책이 쓰였으며 이 책은 기독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책은 왜 속죄가 필요하고 어떤 조건이 요구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한 책으로써 오늘날의 속죄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4] 오늘날 하나님의 죄책에 대한 속죄,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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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4) - 보나벤투라

- 성 보나벤투라 St. Bonaventura - 성 보나벤투라는 1240년대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바뇨레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성 프란치스코회에[1] 회원이 되었고, 장성한 뒤에는 파리에서 알렉산더 할레시우스에게 수학하였다. 할레시우스는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인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전통을 유지했던 사람으로서 신학과 상관없는 철학에 대해 반대했다. 보나벤투라도 이 전통을 고수하여 언제나 신앙의 빛에 지도받는 철학을 강조하였다. 특히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모든 사물을 인식하는 구체적 인간상을 추구했던 보나벤투라에게 철학자들이 말하는 순수인간, 개념적 인간은 사실 현실적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치관으로 교수 및 사제 활동을 평생에 걸쳐 하였고 주요 저서로는 ‘하나님에게 이르는 정신의 여정’, ‘십계에 대한 강의’, ‘성령의 열 가지 선물’, ‘신학 요강’ 등이 있다. 이런 그는 철학사적으로 볼 때 과연 철학자로 다루어야하는가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코플스턴에 의하면 그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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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5) - 토마스 아퀴나스 인식론

-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a - “너희는 주께 기름부름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요 1:27) 이런 말씀에 근거할 때 기독교 진리는 그 진리됨에 있어 다른 근원에서 온 사상을 필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 진리는 그 자체로 참되고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진리를 다른 어떤 것과 혼합할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다. 우리는 그런 면모들을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알아볼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1224년 혹은 1225년에 태어났다. 다섯 살에 수도 지원생원으로 들어났으며 그 때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원하였다. 하지만 그가 14살에 나폴리 대학에 입학한 뒤 도미니코회원들의 생활에 매료되어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으며 평생을 도미니코회에 있으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특히 그에게 아리스토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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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6) -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론

영혼론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혼을 인간의 형상으로 이해했으며, 이 형상이 질료로서 인간의 현실태를 가능케 한다고 이해했다. 영혼은 인간의 형상인 것이다. 인간의 몸인 질료는 인간의 다양화에, 인간의 형상인 영혼은 인간의 구체화에 봉사한다. 그러므로 아퀴나스는 플라톤과 어거스틴주의와 다르게 신체와 영혼의 결합성을 중요시한다. 또한 모든 철학의 시작을 경험의 의한 감각정보를 통해 시작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따라서 플라톤처럼 인간영혼은 모든 이데아를 소유한 생득적 지식상태가 아니라 백지상태로 시작한다고 아퀴나스는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퀴나스가 인간의 중심점을 이성으로서, 주지주의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퀴나스는 인간의 종차가 이성과 사고이며 이 기능을 소유한 것이 영혼이라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영혼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퀴나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지성적 능력에 돌렸다. 그에 의하면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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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7) -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 인식론

-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 -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200년대에 태어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프란치스코회에서 서품을 받아 신부로 활동했으며 옥스퍼드에서 강연을 하여 주요 사상을 전파하였다. 특히 그의 ‘옥스퍼드 강의록’, ‘명제집 주석’이 유명하다. 그에 사상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를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어거스틴주의를 차용하기도 하는데 안셀무스의 본체론적 증명이라던지 지성을 의지보다 강조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이런 부분에서 아퀴나스와 어거스틴의 종합을 꾀하려던 인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아퀴나스와 관련돼서 많은 언급을 하지만 또 그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식의 객관성을 중요시 했다는 점에서 역사 아퀴나스를 계승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에 대한 철학적 평가는 14세기의 소위 ‘비판의 길’에 문을 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퀴나스를 비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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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중세철학(8) - 둔스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윤리학

윤리학 스코투스는 인간행위에 있어 선은 무엇인가 물을 때 바른 이성에 의해 요구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을 때라 말한다. 또한 동시에 행위가 자유의지로부터 나와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윤리의 요건으로서 행위의 주체성과 도덕의 객관적, 법적 성격을 모두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스코투스가 윤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점을 잘 간파한 것이다. 윤리란 자유로운 행위뿐만 아니라 법과 일치되는 자유행위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덕적으로 선한 모든 행위는 바른 이성과 일치하는 대상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코투스는 이것만으로는 완전한 윤리가 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모든 도덕적 행위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들이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목적도 선해야 하지만 그 수단, 그 행위를 하는 의도까지 모두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 선이란 행위가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선해야 하며 바른 의도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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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르네상스(1) - 르네상스를 다룸의 의미

‘르네상스’라는 14~15세기에 일어났던 일련의 정신사적 변화를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중세와 더불어 우리가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와 신앙이 ‘창조’라는 터 위에서 다루어짐을 성경이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와 신앙을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고, ‘창조’사건과 깊게 관련지어 말하고 있다. 이런 성경의 형식은 우리가 ‘교회와 신앙을’ 접근하는 일련의 관점을 지시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와 신앙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다. 교회와 신앙이 단순한 지식이라면 ‘역사’와 ‘창조’와 상관없이 물리학처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대를 다루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축하려고 했던 철학적 체계들이 어떻게 신앙과 다른지 설파하고자 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물리학으로 치환하고자 시도했다. 진리를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특징 속에서 ‘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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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1) -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그의 윤리론은 플라톤에 비해 상당히 상식적이다. 플라톤이 윤리적인 면에서 철저히 주지주의적인 면을 보인 것에 반해, 그는 알고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지의 중요성을 그의 윤리론에서 밝힌다. 또한 플라톤이 감정과 쾌락을 윤리에서 배제시켰으나, 그는 감정과 쾌락, 행복을 그의 윤리론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고려해볼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으로 치우지치 않으려고 노력했던 종합적 철학자였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윤리를 목적론적으로 다룬다. 이는 플라톤과 칸트와 대비하면 더욱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데, 플라톤에게 윤리란 어떤 것이 덕인지 아는 것, 분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이 없고,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칸트는 플라톤식의 주지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나 선이 수단,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언명령으로서 선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윤리가 목적적임을 관찰했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주장한다.[2] 윤리적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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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철학(12) - 아리스토텔레스와 자연론

자연론에 대해서는 플라톤과 다르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식물, 동물, 해부학 등 다양한 자연연구는 그의 진리관이 사뭇 플라톤과 다름을 분명히 알게 하여 준다. 이런 점에서 로마카톨릭이 플라톤을 버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취한 것은 나름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또한 정치학이나 미학을 제외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론을 이 글을 통해 취급하는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론, 곧 물리학이 르네상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1] 그에게 자연론은 physics인데 오늘날 물리학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는 이 학문을 통해 변화하는 대상들을 탐구하고자 했다. 즉 그에게 운동이란 한 대상이 변화하여 최종 현실태까지 이르는 것이고 자연론은 이런 점들을 다룬다. 그런데 그 대상이 변화하는 이유는 형상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비유하는 예가 식물이다. 식물의 씨앗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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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

나의 생각 파르메니데스 철하기 2017. 10. 30. 23:35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그가 말하는 일자는 무엇일까? 1. 존재의 단일성을 말하는 걸까? 라이프니츠 나는 나이여야만 한다 고로 변할 수 없다. 그럼 나는 너를 어떻게 알지? 결국 우린 하나? 2. 없음은 무얼까? 없음은 생각할 수 없다. 모두다가 존재이다. 결국 존재다. 이 의미인가? 아는 분은 알려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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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생각 계시 철하기 2017. 11. 4. 23:09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신학 카테고리를 만든지는 오래되었지민 공부가 부족하여 글을 올리진 않았다. 요즘들어 문뜩 생각하고 깨닫는 바를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짤막한 글을 올려본다. 신학의 출발은 나 자신이 초자연주의자이냐 자연주의냐의 선택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부 코넬리우스 벤틸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에서 우리는 모두 출발한다. 초자연주의자들은 신이 있으며 있기에 계시를 말한다. 계시란 결국 진정한 신이 자기 자신을 비추는 하나의 행위이다. 이렇게 자신을 알린다는 신의 행위를 우리가 인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것이 반성적이거나 2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지식인 계시가 어떠한 이성의 반성적인 과정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계시적 내용자체도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들과 대비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비판하기위해 자연주의자들은 계시의 내용이 실은 주변의 영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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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2

생각 계시 2 철하기 2017. 11. 4. 23:16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계시란 결국 신의 행위이다. 계시를 말하는 종교나 문서들은 많다. 하지만 진정한 계시는 결국 신중심적 개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주의적 요소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전주권사상과 계시는 불가분적 관계이다. 이러한 개념아래 인간이 포섭되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종교여야만 진정한 계시를 말할 수 있다. 계시현상은 결국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자가 자신을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다른 존재자에게 알리는 데 나타나는 일체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 신개념은 인간의 자의적이거나 인류의 역사적인 신개념이 나타날 수 없다. 오리혀 이것을 부정한다. 또한 여기에는 어떤 논증이 아니라 자명적인 혹은 직접적인 것으러 나타난다. 논증은 결국 인간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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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형이상학 서설(1) - 머리글, 형이상학은 가능한가?

오늘부터 그간의 생각정리를 접고, 칸트의 '형이상학 서설'을 읽어보며 칸트철학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사사로운 생각들을 올려보고자 한다. 이 책의 원제는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이다. 제목과 같이 칸트는 자신이 모든 형이상학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의 원리를 다잡았다고 생각한 듯 보인다. 어찌보면 얼마나 교만한 제목인가? 자신의 책 한권으로 앞으로 등장할 모든 형이상학은 새로움을 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 '순수이성 비판'이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워 좀 더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쓴 책이라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한국에서 독일어와 칸트 철학에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백종원 교수의 번역이라 믿고 도전해본다. 책 머리글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과 이 책을 통해 알리고 싶은 바를 나름 분명하게 밝힌다. "과연 형이상학과 같은 어떤 것이 도무지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가"하는 물을 던지는 것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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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형이상학 서설(2) - 종합판단과 수학 그리고 선험성

칸트는 머리글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언급한 뒤 바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지를 논한다. '각 학문'은 그만의 독특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그 독특성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바로 그 '대상'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과 화학을 구분하며 자신의 독특성을 보장하는 것은 각 학문들의 대상이다. 이와 같은 성질은 '형이상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형이상학은 다른 학문과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런 점에서 '형이상학'은 그 대상이 '경험적'이지 않음으로 독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칸트에게 있어 '형이상학'은 '비경험적'인 것으로 그 특질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칸트는 '순수'라는 말을 붙여 형이상학이 '순수지성', '순수이성'으로부터의 인식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칸트가 여기서 논한 형이상학의 '비경험적' 성격은 자신의 논리를 드러내기위한 중요한 '단초' 역할은 한다. 왜냐하면 이 '비경험적 성격'은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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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형이상학 서설(3) - 순수수학의 가능성

칸트는 서론에서 준비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논의를 '순수수학의 가능성'부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선험철학'의 가성의 문을 열어준 것이 바로 수학이었고, 수학을 통해 참된 명제의 '종합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1~2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순수수학은 칸트에 설명에 의하면 종합명제이다. 그리고 종합명제임에도 그것이 필연적인 이유, 그리고 그것이 종합명제이기에 반드시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술어가 등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종합'을 진행하는 하나의 '형식'이 선험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칸트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순수수학이 가능한지를 밝힌다. 칸트가 여기서 주요하게 밝힌 것은 '대상'을 이야기하는 '수학'이 어떻게 '대상'을 '선행'하는 '선험성'을 갖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상에 대한 직관이 그 대상 자신에 선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형이상학 서설, 아카넷, p 158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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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형이상학 서설(4) - 순수 자연과학의 가능성

칸트는 '순수 수학'의 가능성을 '순수 감성형식'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순수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이와 연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순수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논하는 뱡항성은 기본적으로 '순수 수학'의 맥락과 동일하다. 순수 자연과학 속에서 느끼는 필연성 혹은 합법칙성은 단순히 경험의 '개연성'이 아니다. 하지만 '후험적'인 방식은 우리에게 '필연성'이 아니라 오직 '개연성'밖에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칸트가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필연성'을 어떻게 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냐이다. 그런데 경험은 나에게 무엇이 현존하며, 그것이 어떠한가는 가느쳐주지만, 결코 그것이 반드시 그러해야 하며 다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경험은 결코 사물들 그 자체의 자연본성을 가르쳐줄 수가 없다.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형이상학 서설, 아카넷, p 182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순수 수학'을 가능케 했던 '순수 감성 형식'과 같이 '선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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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철학에 대해서

최근 몇 년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 자신의 생각의 미숙함, 사고의 거침 등의 이유였다.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한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진지함 때문이었다. 다만, 최근에 생각을 정리하고 지난 몇 년간 또래 교우들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미숙하나마 다루었던 내용을 공유하고 기록하기 위해 해당 글들을 올린다. 해당 글들은 프레드릭 코플스턴의 철학전집을 읽으며 나름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학자의 의견을 덧붙인 초보적인 글이다. 20대 중반부터 작성된 글이라 철학의 접근 역시 조악하나 그것 역시 나의 일부이자 성장의 디딤돌이었기에 보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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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정신과 물체

나의 생각 스피노자의 정신과 물체 철하기 2017. 9. 4. 1:13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한 시간강사의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요즘 계속 생각하는 주제인만큼 계속해서 탐구해봐야 할 듯. 스피노자의 정신과 물체에 대한 의견은 매우 난해한 듯하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처럼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하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애매함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까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데카르트의 경우는 심신합일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명백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그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자연의 설립"이라 말한다. 확실히 나의 신체는 다른 물질적인 것과 다른 어떤 것일까? 나의 손은 그저 여러 단백질의 결합일까? 아니면 실체적 단일체일까?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극단적으로 두 갈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1) 물질적으로 구성된 신체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고유한 신체가 있다. 2) 물질적인 신체와 구별되는 신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데카르트는 분명히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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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물체 - 토마스 아퀴나스

나의 생각 정신과 물체 - 토마스 아퀴나스 철하기 2017. 9. 4. 11:45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정신과 물체의 대한 논의를 계속 하고 있다. 이번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생각한 몸과 정신의 대한 이론이다. 참고 논문으로 가톨릭대학 철학과 교수 박승찬씨의 논문을 참고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통해 생각되는 바는 1) 정신과 신체의 합일 문제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시대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역사적 문제이다. 2) 인류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세가지 방향성에서 해결하려 했다. - 1) 유심론 2) 유물론 3) 합일 3) 유심론은 고대 종교와 플라톤 철학에서, 유물론은 초기 헬레니즘과 데모크리토스, 자연철학자들에게서, 합일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서 발견된다. 4) 현대에도 위 세 범주 외에는 딱히 다른 설명방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현대는 과학의 발전으로 두 가지 양상이 강하게 대립되는데 유물론과 합일주의이다. 5) 오늘날 유심론을 주장하는 이는 과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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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실체관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의 실체관 철하기 2017. 9. 5. 20:4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그간 정신과 실체 문제를 다루며 라이프니츠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증진된 것 같아, 그의 사상을 오늘부터 정리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연세대 박경자 교수의 [실체의 형이상학]을 참고로 하여 라이프니츠의 실체관의 중요한 명제들을 살펴보고 다음부터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모나드론]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의 실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데카르트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 모든 것을 회의하였지만 자명한 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2) 정신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기에 정신은 존재한다. 위의 두 명제는 데카르트가 자신의 철학의 대들보로 삼은 것이다. 그는 이 두 명제를 통해 물체의 외부 실재성을 증명하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물체는 정신 외부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기정 사실화하고 이를 증명하려고 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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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1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1 철하기 2017. 9. 7. 0:4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이 글부터 모나드론에 기재된 90가지 명제를 살펴보며 그 의미를 적고자한다. 책은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배선복 교수가 옮긴 [G. W. 라이프니츠 모나드론 외]를 참고하였다. 1.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모나드는 복합적인 것 안에 있는 단순실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부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2. 복합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단순실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복합적인 것은 단순실체들의 무더기나 집적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3. 그러나 부분이 없는 곳에서는 연장도 없고 형태도 없으며 나뉠 수도 없다. 그래서 모나드는 자연의 참된 원자이고 한마디로 만물의 원소다. 명제 &1 ~ &3에서 라이프니츠는 실체란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하다. 실체란 진짜 있는 것이다. 과연 진짜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진짜 있는 것은 개별자이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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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2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2 철하기 2017. 9. 8. 12:58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지난 시간에는 라이프니츠가 실체란 나뉠 수 없는 것임을 말했음을 논하였다. 그리고 그 규정은 자연스럽게 아래와 같은 논의를 발생시킨다. 4. 만물의 원소들 또한 자신의 해체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의 단순실체가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길은 없다. 즉, 여기서는 실체라 불리는 모나드의 출생을 말하고 있다. '나'라는 실체는 불가분한 영혼 혹은 정신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물질로부터 출생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리고 물질은 분해되어 사라질지라도 분해될 수 없는 실체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은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도 나타난 질문들이다. 5. 어떤 단순실체도 합성된 것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의 단순실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지를 파악할 길은 없다. 6. 그러므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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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3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3 철하기 2017. 9. 9. 11:0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12. 그러나 변화의 원칙 외에도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범례화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이 범례화 단순실체의 특수화와 다양성 작용이 일어난다. 13. 이 범례화는 복합적인 것이나 단순한 것 안에서 다수성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모든 자연적 변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어떤 것은 먼저 변화하 고어떤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단순실체는 그것이 어떤 부분들도 포함하지 않을지라도 성향이나 관계에서 복수성을 포함해야 한다. $12 ~ $13은 지난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2'에서 논한 단일체의 코딩내용이다. 범례화란 의미가 번역상 제대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문맥상 컴퓨터 용어인 '코딩'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즉, 단순실체가 무한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단순실체끼리의 관계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 단순실체 안에 이미 다른 단순실체의 관계가 그 단순실체의 단일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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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4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4 철하기 2017. 9. 10. 17:3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18. 모든 단순실체나 피조 모나드에는 엔텔레케이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어로 '엑소우시 토 엔텔레스'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정한 완전성에 대해 일종의 자기만족을 하는데, 이것이 그들을 내적 활동의 원천, 말하자면, 비물질적인 자동기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19. 만약 내가 일반적 의미에서 지각과 욕구라고 설명한 모든 것을 영혼이라 부르려 한다면, 모든 단순실체나 피조 모나드를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인 감정은 단순지각보다 상위의 것이기 때문에 단순지각을 수반하는 단순실체는 영혼보다는 모나드나 완전현실물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적당하다. 이에 반해 영혼이라는 표현은 좀더 판명하게 지각하고 기억을 수반하는 모나드에만 쓰이도록 유보해야 할 것이다. 20. 예를 들면 우리는 기절했거나 꿈 없는 깊은 수면에 빠진 경우 아무것도 기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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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5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5 철하기 2017. 9. 15. 15:52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26. 기억은 이성을 모방하는 영혼에게 일종의 경험적 인과연쇄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경험적 인과연쇄는 이성과 분간되어야 한다. 만약 동물이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지각하고 그에 대한 이전의 비슷한 지각을 떠올린다면 동물은 자신의 기억을 이전의 지각과 연합하고 당시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개에게 몽둥이를 보여주면, 개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었던 고통을 기억하고 울부짖거나 도망친다. 27. 동물들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강한 상상력은 그들이 이전에 받았던 지각의 강도나 다수성에 따라 다르다. 종종 한순간의 강력한 인상은 오랜 습관이나 몇 차례 반복된 중간 정도 강도의 지각과 동일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동물의 지각에 대한 설명은 지각 자체에 대한 데카르트주의자들과 경험론자들의 이론을 동시에 비판한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신활동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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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있다.

나의 생각 여기에 있다. 철하기 2017. 9. 16. 23:53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이 글은 미키 기요시의 저서 [지금 시작하는 철학]이란 명저에서 "인간과 환경"이란 주제를 읽고 느낀 생각이다. 특히 '나의 생각'의 타자의 문제나 물체와 정신이란 글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일단 마음에 와 닿는 인용구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외적 영향이 매우 다양한 조건 속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면서도 일정하게 획득한 결정적 독립성을 잃지 않는 천성이 있다." 이는 괴테가 한 말이다. 독일이 인정한 지성의 한 말이기에 더욱 와 닿는다. 나는 환경이 조성한 존재자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인 것은 없었다. 나의 모든 유전체계에 '나'라는 개념은 본래 없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점차 생겨난다. '나'는 어디서 온걸까? 사실 '나'가 없다면 영향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영향을 받아 내가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만이 나를 조성하는 듯하나 여기서 이미 '나'가 전제한다. 결국 무엇이 우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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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나의 생각 배려 철하기 2017. 9. 19. 9:45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라이프니츠의 글을 계속 읽고 쓰면서 드는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지난 주 우연히 이웃의 색채에 관한 글을 읽었다. 색채는 실재물이나 어떤 사물의 고유 속성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사물들의 배려로 탄생한 하나의 '사건'이다. 색이란 사실 유기체의 언어다. 사과란 물체가 팅겨낸 색을 우리 신체는 시각적 신경언어로 해석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결국 사과를 구성하는 물체의 특징과 빛의 특징 그리고 신체의 특징이 이루는 하나의 사건이 바로 색의 인식이다. 결국 빛도 사과도 나의 신체도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실체이지만 서로의 배려를 통해 하나의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인식을 창조해낸다. 이런 측면에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그리고 관계에 대한 고찰은 위의 설명과 잘 부합되는 듯하다. 서로의 배려는 그 실체에 다른 실체에 대한 '고려'가 분명히 있어야 가능하다는 라이프니츠의 해석은 시간이 지나도 현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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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 6(단자론)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 6(단자론) 철하기 2017. 9. 23. 18:43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라이프니츠는 명제 39번부터 계속해서 '신'과 관련하여 존재자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선 그가 '신'을 인식하기까지 어떤 논리를 사용했는지 정의해보자. 신 인식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을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삼는다. 그에게 실체는 단일한 그 무엇이다. "저것은 토끼이다." 등 어떤 대상을 지칭할 때는 반드시 보편적인 개념이 필요한데 라이프니츠는 이 보편적 개념성을 실체의 고유 특성으로 보았다. 즉, 그에게 실체의 가장 큰 특성은 '단일성'이다. 하지만 현실의 존재들은 물질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자연철학자들은 근본물질을 상정의 그것으로 모든 현실 존재자들을 정의하려 하였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세포 c 100개로 구성되었고, 세포 c가 더이상 불가분할적이면 나의 실체는 세포c 100개로 구성된 그 무엇이다. 하지만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물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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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7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모나드론(단자론) 7 철하기 2017. 9. 24. 18:3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가능세계 신에게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세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선택한 신의 의지는 아무 근거가 없지 않다. 그 근거는 각 세계가 갖는 정합성 혹은 완전성에 있다. 결국 이 세계를 선택한 충족이유는 이 세계의 완전성 혹은 정합성이 다른 가능세계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는 신의 특성과 관계있는데, 신은 자신의 무한한 지혜로 최선의 선택을 하므로 이 세계는 최선의 결과이다. 이는 결국 각 모나드에게도 적용된다. 각 모나드는 하나의 우주를 자시 중심적으로 갖고 있기에 역시 그 모나드도 여러 가능성 중 가장 정합성 혹은 완전성이 높은 것으로 창조되었다. & 53 ~ 54 지금 신의 관념에는 무한히 많은 가능세계가 있지만 그들 가운데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세계보다 이 세계를 결정하도록 이끄는 신의 선택에도 하나의 충족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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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물체 그리고 인격

나의 생각 정신, 물체 그리고 인격 철하기 2017. 8. 23. 18:29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이웃의 한 논문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유익해보여 따로 구해 논문을 읽어보았다. 논문제목은 인격, 인간인격 그리고 인격동일성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DBPIA에서 찾아보시길. 그 글은 인격동일성의 근거를 유기체로만 돌리는 동물주의와 인격동일성을 심리적으로 다루려는 심리적 관점을 비판하고 그 둘의 화해를 모색하여 인간인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일단 동물주의와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동물주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우연적으로만 자기의식, 반성능력 등을 가진 인격이라 본다. 동물주의가 이런 역사적 상식과 반하는 주장을 하는 데엔 나름 이유가 있다. 1) 만약 인간을 본질적인 인격 소유에 따라 정의한다면 태아 혹은 유아기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2) 만일 뇌사상태에 빠져 반성이나 추론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3) 만일 인격이란 심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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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물체 2

나의 생각 정신과 물체 2 철하기 2017. 8. 25. 23:4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정신과 물체의 문제주제가 요즘 계속 관심이 가 관련된 논문을 찾다가 장신대 조직신학 교수 현요한씨가 쓴 '신경과학과 정신-신체의 관계 문제'라는 논문이 눈에 띄어 읽어본 후 이 곳에 정리하면서 나의 생각을 남겨본다. dbpia에서 무료로 다운 가능하니 읽어보면 좋을 듯. 1. 오늘날 신경과학의 발달로 뇌신경 활동과 정신영역간 관계는 거의 확실하다. 2. 이는 데카르트가 내놓은 정신 실체, 물체 실체의 구분 즉, 이원론을 부정한다. 또한 고대로부터 여러 문헌과 역사적 자료가 입증하는바 신체와 영혼이라는 또 하나의 실체를 인식한 인류의 경험을 또한 부정한다. 3. 정확히 말하자면 물체-정신이라는 주제에 대해 크게는 이원론과 그 외적 주제로 나뉠 수 있다 4. 이원론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이론들이 있다. - 데카르트식 이원론 : 정신적 실체와 물체적 실체 구분. - 속성 이원론 : 정신과 신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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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 , '그 돌' - 정신과 물체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고찰

나의 생각 '그 나무' , '그 돌' - 정신과 물체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고찰 철하기 2017. 8. 28. 0:0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정신과 물체 그리고 인격이란 주제로 글을 썼을 때 고민거리도 남겨두었던 것, 과연 나무와 돌들을 개별자로서 단일체로 인식할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이 주제에 대해서 나 혼자 고민보다는 역사적으로 권위있는 철학자들은 어떻게 파악하고자 노력했는지 살펴보았다. 라이프니츠의 물체관에 대한 논문 한림대 교수 이상명씨의 [라이프니츠의 물체적 실체]를 참조하였다. 우선 현대의 유물론적 견해, 물질을 물질로서만 파악하는 버릇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역사적 배경으로서 우린 근대에서 시작해야할 것인다. 그 대표자주자로서 가릴레이, 뉴튼 등이다. 그들은 사물을 파악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가톨릭의 자연관)을 탈피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목적인, 시동인, 형상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이런 것보다 '실험'을 통한 수학적, 기하학적 분석을 중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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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7권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7권 철하기 2017. 7. 12. 1:08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제7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의미를 언급하며 왜 자신의 학문이 실체를 다루어야 하는지 말한다. 그 사물이 무엇인지? 그 사물이 어떻게 있는지, 어느 정도 있는지? 등 사물에 관한 질문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학문이 제1원인적인 것과 관계되야 한다 말하면서 과연 제1의적인 존재는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은 '실체'이다. 예를 들어 하얀 개를 볼 때 우리는 이것은 하얀 개이다라 말한다. 하지만 하얀 개는 사실 그 한 개체의 속성이다. 개라는 것도 보편 속성이며, 하얗다는 것도 역시 보편 속성이다. 하지만 속성은 언제나 부차적이며 존재적인 근원 '진짜 있음'이 선재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이 바로 '실체'라 말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실체가 먼저 있고, 속성적인 것은 시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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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나의 생각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철하기 2017. 7. 16. 22:2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우리는 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자유는 우리나라, 우리민족 역사이래 가장 극대화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이 자유주의는 어쩔 수없이 개인주의와 맞물려 있다. 개인의 자유,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고, 그에 따라 한 민족에게 내재되어있던 여러 가치관과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내재돼있는 전통적 과치관은 사실 전체주의 양상을 띈다. 구체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개인이 속한 집단과 연계하여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현시대가 조선이라 가정해보자, '나'라는 존재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존재이다. 부모는 나의 근거이자 나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푼 존재이다. 결국 나의 행동양식 중 하나는 '나'의 실현이 아니라 자식으로서 '효'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이 나라의 '백성'이다. 백성은 국가의 근간이자,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역, 조, 그리고 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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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9권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9권 철하기 2017. 7. 23. 17:18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제9권 서두에서는 이제까지 자신이 논한 내용이 한마디로 제1의적으로 '있는' 사물에 대하여서였다 말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가 논한 내용들은 본질, 성질, 양 등이었다. 하지만 이 사항들로는 '있다'라는 개념을 완전히 설명할 수없다. 왜냐하면 '있다'는 가능태(디나미스)와 현실태(에네르게이아)의 측면에서도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있다라고 일컬어지는 사물의 존재는 이와 같이 무엇인가(본질)라고 하거나 ..., 다른 한편으로는 디나미스와 완성상태 쪽에서도 각각 규정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 형이상학 제 9권 p 255 일단, 가능태라는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A에서 B로 전환되는 상황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가능태 또한 존재할 수있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 자체를 운동이라 일컫고 이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원인' 또는 힘이라 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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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0권 - '하나(일)'이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0권 - '하나(일)'이란? 철하기 2017. 7. 26. 20:26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형이상학에서 '하나'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일' 혹은 '하나'를 하면 수의 개념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 개념은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저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코넬리우스 반틸은 자신의 저서 변증학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말할 때 다수에서 하나를 찾는 것이라 말했다. 결국 이 '하나'를 아는 것이 철학의 전반적인 주제와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이 주제를 갑작스럽게 다루는 이유도 그의 실체론을 다루기 위해서는 '하나'라는 개념을 꼭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와 함께 하나(일)에 대해 알아보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하나'라는 명칭은 연속적인 사물 혹은 전체적으로 하나인 사물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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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2권 - 실체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2권 - 실체에 관하여 철하기 2017. 8. 5. 20:07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1장 아리스토텔레스는 12권에서 본격적으로 실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실체란 상식적으로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있다고 할 수있을까? 역사적으로 그는 '있다'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소개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느 편이냐 하면, 오히려 보편적인 사물이 보다 더 실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유(類)는 보편적이지만, 이러한 유를 그들은 그들의 논리적인 탐구 방법에 입각해서 한층 뛰어난 원리이자 실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옛날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물을, 예를 들어 불이나 흙을 실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에 공통된 결합물 즉 물체를 실체라고는 하지 않았다. 존재란 무엇일까? 사실 언뜻 보면 존재란 지족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삼라만상이 언젠가는 소멸한다. 이런 비존재의 가능성을 기닌 개체들을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고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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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2권 - 사유의 사유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 12권 - 사유의 사유 철하기 2017. 8. 6. 23:26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6~7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실체를 말하였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리는 부동적이며, 제1적으로 영원하며, 유일한 운동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은 질료를 갖지않고 순수히 자신으로서 존재하면서 만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8장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의 부동자를 기반으로 그의 우주론을 전개해나간다. 8장 이 세상이 영원히 운동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는듯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영원한 운동의 원인으로서, 그리고 모든 존재의 제1의 실체로서 부동자를 상정했다. 그렇다면 그 제1의 실체에 의해 바로 생성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천계'라 말했다. 왜냐하면 이 천계의 운동은 유비적으로 제1의 부동자와 가장 근접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보면 천계는 늘 일정한 운동을 한다. 특히 이는 원운동으로 보이는데, 제1의 부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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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제13장 이데아론 비판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제13장 이데아론 비판 철하기 2017. 8. 9. 22:52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13장에서는 다시 이데아론 비판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읽으며 가장 힘든 점은 각 장마다 연결점이 없고 논의했던 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도 13장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하여 인내심을 갖고 고찰해본다. 우선적으로 그가 다루려 하는 부분은 감각적인 실체 외에 부동하고 영원적인 실체가 있는지이다. 우선 잘 알려진 바대로 역사적으로 이데아와 수적 대상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로 수적 대상에 대한 존재여부를 논한다. 만약 수적대상이 존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하는가? 감각적 사물 안에 존재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고 해보자. 그렇게 되면 한 사물의 면에는 수학적 대상의 면이 실재하고 있을 것이다. 수학적 대상으로서 면은 선으로 구성돼있고, 그 선은 점으로 구성돼있다. 점은 수학적으로 불가분해하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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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제14권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제14권 철하기 2017. 8. 12. 9:40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1장 - 수적 이데아론 비판 14권의 전체적인 주제는 13권과 마찬가지로, 플라톤 학파와 피타고라스 핟파의 논증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수적 원리'에 대한 각 학파의 의견을 논파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는 처음에 플라톤 학파의 수적 원리론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플라톤 학파는 이데아의 질료 혹은 훤인들의 질료를 다루면서 1의 질료(원인)을 그의 부정인 2 혹은 多라 말하였다. 즉, 1은 자신의 부정인 2를 질료로 삼아 원리로서 존재한다. 그들은 이것을 유비삼아 다른 실체들의 존재 원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 단, 어떤 이들은 1의 질료를 부등(不等)으로 삼기도 하거나 혹은 2가 小 와 多에서 생겨난다고도 보았다. 이런 생각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의 상식 선에서는 매우 추상적인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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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와 사상 4 _ 소크라테스의 불만

오늘부터 '소크라테스'를 소개합니다. 드디어 소크라테스까지 왔습니다. '드디어'란 말을 쓰듯이 소크라테스는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를 잘 이해해야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철학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의 철학을 소개하지 전에 제가 어떤 원칙으로 그의 사상을 소개할지 말해야겠습니다. 1. 제가 말하는 소크라테스 철학은 플라톤을 포함합니다. 보통 '플라톤 철학'이라 부르는데, 이 안에 소크라테스가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스스로 남긴 저작이 없어 플라톤의 저작을 통해서만 소크라테스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의 상징성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소크라테스 철학이라 부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철학이라 명명하기도 합니다. 2. 저는 우선 이 글에서 소크라테스 철학의 배경을 설명하고 다음 글에서 소크라테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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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와 사상 5_ 소크라테스의 인식론 1

우리는 언제나 경험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보고 듣고 느낍니다. 저의 책상 위에는 컵이 있고 컴퓨터가 있습니다. 이것을 '지각 현상'이라 합니다. 그냥 그대로의 세계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지각 현상'을 수용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지각 현상을 구성하는 존재입니다. 산과 들에 꽃을 본다고 해봅시다. 인간은 그 모습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아름답다.'라고 판단을 합니다. 즉 인간은 '지각 현상'을 판단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쫓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받아 본 인간은 고양이가 쥐보다 '크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답다.'라든지 '크다.'라는 관념 혹은 개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경험론'에서는 꽃을 보며 느끼는 즐거운 감정 혹은 쾌락이 '아름답다.'라는 관념을 이룬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아름답다.'라는 관념이 생긴다면 개개인마다 '아름답다.'라는 개념 혹은 관념이 달라야 하는데, 대체로 그 의미가 보편적입니다. 소크라테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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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테 철학자와 사상 6_소크라테스 인식론 2 - 의의와 한계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소크라테스의 인식론을 설명하겠습니다. 이해를 위해 잠시 그의 인식론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잎사귀를 보고,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즉, 경험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합니다. 꽃을 보기만 하지 않고 "아름답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름답다고 판단 내린 꽃을 보고 아름답지 않고 추하다 합니다. 이렇게 동일 대상에 대해 모순된 판단이 있게 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왜 동일한 대상을 두고 사람들은 다른 판단을 내릴까?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람들이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개인적이고, 경험적입니다. 즉, 보편적이지 않는 '의견'일 뿐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아름다움이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은 혼란하고 진리가 어둠에 가리게 된 것입니다. 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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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 7_ 소크라테스의 도덕론

오늘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마지막 시간인 '도덕론'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도덕론은 다른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식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오히려 인식론 안에 그의 도덕론이 포함된다고 말해야 될 것 같군요. 이러한 현상은 소크라테스가 도덕조차도 '지식'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타났습니다. 소위 '지행합일'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철학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그의 도덕론은 '올바르다.'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등장하는 아데이만토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올바름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요청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올바름이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국가의 올바름을 먼저 파악하자고 제안합니다. "올바름에는 한 사람의 것도 있지만, 나라 전체의 것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나라와 관련된 올바름은 한결 큰 규모이며 이에 따라 알아내기가 더 쉽지 않겠나? 그러니 나라와 관련된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 먼저 탐구하도록 하세. 그런 뒤, 개개인의 올바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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