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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사를 볼 수록 가슴 속에 한이 맺히는 느낌을 받는다. 손님의 한, 손님네 조상들의 한,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사는 손님들에 대한 부러움에서 오는 무당 자신의 한. 신기한 건 이 한이 계속 맺힐 때마다 점사가 더 잘 나온다. 무당은 한이 많을 수록 영검해진다는 말을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간혹 한 번에 너무 많은 한이 맺히면 기도하다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무당을 액받이라 했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한을 이고 가야할 지는 감조차 안 오지만, 내 몸 상하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경문외우고 운동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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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께서 직접 인간의 몸에 내릴 수 있는 가

generated by Image FX 옥황상제님이나 지리산 산신님 같은 정말 큰 신(神)이, 사람 몸에 직접 강림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세계야말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완벽하게 적용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인간 사회에서는 한쪽이 과도한 이득을 취하고, 다른 쪽이 손해만 보는 사기도 벌어지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귀신이 나에게 100의 이득을 주면, 난 반드시 100만큼을 되갚아야 하는 식이죠. 만약 돈 50만으로 갚았다면, 나머지 50은 내 운이나 에너지, 혹은 노동 등의 다른 방식으로 청구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큰 신이 인간 몸에 직접 내려온다는 건 상당히 큰 사건이에요. 큰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너무 높은 차원의 신명(神明)들은 인간에게 특별히 바랄 일이 거의 없어요. 그분들은 워낙 바쁘고, 인간 세상의 일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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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도사

KAIST에서 금융 박사과정 하다가 2024년 10월 30일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었습니다. '천명'은 신내림 직전 저희 신령님들께 하사받은 이름이며, 주장께서 도사 명패를 받고 오셨기에 천명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논문을 쓰며 신점을 보고 있습니다. 2호선 삼성역 근처에서 저의 신어머니이신 천신애기 이여슬 선생님, 신형제들과 같이 불리고 있습니다. 전화/방문 상담 모두 가능하며, 상담 문의는 010-8821-9926 으로 문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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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이전의 이야기 1

20살 이전, 영적인 체험은 딱히 없었다. 그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 집안의 특이한 사연들이었다. 누구나 사연 없는 집은 없다지만, 서른둘이 된 지금 돌아봐도 우리 집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친가와 외가는 모두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양가 모두 농사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부모님은 결혼 당시 양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3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을 낳고 전업주부로 가정을 돌보셨고, 아버지는 은행원으로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다. 춘천에서 살던 그 시절, 나에게는 행복했던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의 은행 본점으로 발령받았다. 자연히 우리 가족도 서울 근처로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큰이모 댁에 얹혀살게 되었다. 큰이모는 20살이 되자마자 경리로 취업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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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이전의 이야기 2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우리 집은 큰 결정을 내렸다. 나의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부동산 호황기를 타고 얻은 성공 덕분에, 우리는 목동으로 이사를 갔다. 엄마는 그때 그 아저씨와 연애를 하고 계셨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중학교 1~2학년일 무렵까지였을 거다. 하지만 그때 나는 엄마의 외도에 별 관심이 없었다. 목동은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였고, 그곳의 중학생인 나 역시 학교와 학원, 그리고 PC방이나 공원을 전전하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학생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그저 잠시 머물다 나가는 정류장 같은 곳이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저녁 10시가 되어야 퇴근하셨으니, 나도 그 시간에 맞춰 PC방이나 공원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마 내 중학생 시절의 질풍노도는 학원과 PC방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지나간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살다간 인생이 망가지겠구나.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의 진도를 전혀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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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나의 포지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선한 삶은 뭘까? 내 능력을 키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소비하고 투자하고 기부하는 것. 이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한다는 건 내 노동력과 서비스를 사회에 제공하면서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거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번다는 건, 내 서비스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그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결국,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며,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을 소비하면 누군가의 매출이 되고, 투자를 하면 누군가의 자본이 되며, 기부를 하면 누군가의 생계가 유지된다. 다시 말해, 내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 그럼 여기에서 영성의 자리는 어디일까? 솔직히 말하면... 없다. 무당과 역술인은 이러한 자본주의 가치 순환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점술, 가치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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